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혹시 무기력증이라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인터넷에 글도 몇개씩 남기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노력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어요. 게으른 걸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제가 게으르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단순히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를 먹을 수록 노력이 필요가 없어지게 됐고,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중 고등학생때는 학원을 다니니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저는 남들보다 훨씬 조금 노력해도 뭐든 잘했었고, 학교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저는 뭐든 척척 다 잘해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항상 1등이었어요. 매일 밤 11시 넘게 집에 오고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14시간을 공부해도 노력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즐거웠어요. 그렇게 저는 나름대로 저한테 과분할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저는 대학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런데 대학은 정말 너무 자유로워서 제 마음대로 모든게 가능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수업은 너무 적성에 맞지 않고 괴로울만큼 힘들고 지겨웠어요. 매일 구속받으며 살아왔던 갑작스러운 자유와 방치에 제 나태함을 전 도저히 저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 대해서 미칠듯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집에서는 저에게 매일 공부하라며 압박했고 노력하지 않는 저를 눈에 띄게 싫어했어요. 매일 나를 제어하려고 노력해봐도 매일매일이 실패, 실패, 실패만이 지속되니 저는 정말 공포스러울만큼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한테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탓할 수 없었어요. 모든 이가 전부 나의 게으른 잘못이고 나의 문제라고 생각할 테니까. 저는 제 나름대로 노력 했어요. 비싼 독서실을 끊고 친구한테 매일 같이 공부해달라고 부탁하고. 핸드폰을 금고에 넣고. 학원을 다니고. 공부 모임을 찾고. 제 방에 CCTV를 사서 달기도 했어요. 스터디 큐브라는 조그만 몇백만원의 감옥을 사고 싶었어요. 거기다 저를 가두면 다시 예전처럼 공부가 잘 될 것 같아서. 그런데 정말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너무 힘이 들어서 고통스러웠어요. 그냥 모든게 하나하나가 다 너무 지쳤어요. 이상하게 공부가 하나도 안 됐어요. 옛날이랑 달리 집중이 아예 안 됐어요. 너무 재미없고 구역질이 나왔어요. 너무 슬프고 비관적인 생각만이 가득했어요. 너무 막막하고 무서웠어요. 미래를 생각할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그 힘든 수험생활보다 지금의 대학생활이 더 지옥같고 괴로웠어요.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니까 원래 예민했던 저는 겪어본 적 없는 우울증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까 우울증의 증상들이 계속 저를 괴롭히고 저를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붙였어요. 세뇌당한 것처럼 자살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온 몸에 힘이 없었어요. 그냥 너무 죽고만 싶었어요. 그냥 전부 다 놓고 포기해버리고 싶었어요. 암에 걸리는 사람들처럼 나도 정신적으로 암이 걸린 것인가 보다.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저는 포기했어요.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적할 힘이나 에너지가 도저히 없었어요. 너무 힘이 없고 나 자신을 챙길 정신이 안 들만큼 무기력했고 우울증 증상이 이미 온몸을 뒤덮었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최선를 다 했어요. 없는 힘과 용기를 쥐어 짜내서 나를 매일매일 끊임없이 다독이고 억지로라도 음식을 챙겨먹고 밖에서 사람들이랑 지내고 헬스클럽을 끊고 애완동물을 기르고 좋은 노래를 듣고 재밌는 걸 보고 저를 좋아해주는 이성 친구를 만나고. 지금은 전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졸업을 못해서 한학기를 연장해서 더 다니고 있어요. 이제 부모님도 포기를 하셨는지 저를 이해해주세요. 우울증 증상은 거의 다 사라졌어요. 저는 이제 그냥 다 포기했어요. 다만 그냥 이 끔찍한 무기력함과 게으름을 제발 고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증상들이 제가 논문이나 칼럼같은 것도 많이 찾아 읽어봤는데 어렸을 때 걸린 정신병의 후유증이라 고치는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랬어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해도 정신과 약이라 부작용도 심할 것 같고 한 번 시작하면 몇 년은 먹어야 될 것 같아서 무서워요 병원에 가서 상담받는 과정도 무섭고, 그냥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끔찍할만큼 불안하고 무서워요. 어릴 때도 갔던 적이 있으니까요. 항상 이런식이에요. 그냥 모든게 무서워요. 이게 제가 정말 간절하지 않아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