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밥은 니가 챙겨먹어라 ***야 쫌 엄마가 니 가정부냐? 엄마랑 결혼을 한 건지 엄마를 고용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꽉 막혀서는..
니 밥은 니가 챙겨먹어라 ***야 쫌 엄마가 니 가정부냐? 엄마랑 결혼을 한 건지 엄마를 고용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꽉 막혀서는..
힘들어요. 오늘도 오빠한테 맞았어요. 힘들어요. 장애인라고 소리 들어요. 이제 죽을까봐요,
전 아빠랑 평소에 친구같은 사이고 아빠가 정말 절 예뻐하세요. 명절날에도 항상 절 챙기시고 어딜 가던지 딸***라고 불릴 정도로 제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주세요. 그러다 어느 날 제가 아빠 휴대폰의 갤러리를 보게 됐어요. 훔쳐보려던 건 아니었고 아무런 의미없이 한 번 들어가 본 거였는데 노래방에서 찍힌 사진이 총 3장이 있는 거예요. 그 중에 한 장은 아빠의 직장상사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와 도우미로 예상되는 아줌마의 포옹 사진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아빠와 그 아줌마의 포옹 사진 이었어요. 유흥업소를 가지 않는 직장인은 드물다, 모두가 다 그렇다는 말 들어는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줄은 몰랐거든요. 사회 생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아빠 얼굴을 볼때마다 가끔씩 그 사진이 떠올라요 그 사진들을 본 건 저밖에 없고, 가족을 위해서 덮어야 하니까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쪽팔린 일이라 좀.. 힘드네요
저는 17년동안 이때까지 할머니 손에 자라왔어요..근데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등학교를 먼데 가게되서 할머니랑 같이 못살게 됬어요..할머니가 어제 저의 졸업사진을 다 보셨데요...얼마나 슬프셨을까요...할머니 혼자 계셔서 외로우실까봐 너무 걱정되고 혹시나 제가 없는 사이에 아프실까 걱정되요...지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오는데..어떻게 해야 할머니가 슬퍼하지않으실 수 있을까요..
저희 가족은 3명이에요. 저랑 엄마 동생 아빠는 3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아직까지 실감도 안나지만 그때까지는 아빠 직업으로 잘 버텨왔지만 이제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하셨어요 제가 부산에서 살았는데 하필 원주에서 하는 일이 되어버리신거에요.저희 엄마는 영어를 좋아하셔서 영어 직업을 하시고요.저는 부산에서 원주로 전화온다는게 이제 겨우4학년이 되서 3월도 안지난채로 가서 너무 속상하였어요..그리고 제가 향수병이 심해서 토도 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저희 엄마한테는 이제 제가 겨우 버팀목일텐데 나는 엄마한테 해줄수있는게 없고 공부도 적성에 안맞고.... 매번 엄마는 아침일찍나가시는데 제가 매일 설거지도 하고 정리도하는데 동생은 맨날 어지럽히기만하고 철도 들지않고... 그리고 아빠랑 있을때는 아빠랑 많이 ***않았어요... 아빠랑 헤어지는 전 날에도 아빠가 저희랑 자자고 했었는데 마지막이 너무 미안하고 슬퍼요...죄송하고 그래서 저도 엄마랑 많이 자고싶은데 매번 동생이랑만 자서 마음속으로는 속상해요...이러다가 다신 만날수도없을때 그때 얼마나 후회할까.. 엄마랑도 자고 싶고 맨날 엄마랑 자면 동생이 꼭 와서 엄마랑 자요...엄마가 나는 다 커서 혼자 잘수있다고 얘기를 해주지만 매번 알았다고 하고 우는데 너무 슬퍼요....엄마는 내가 있어서 좋다고해주는데 나같은 딸이 있어서 좋다는데....나는 왜 이렇게 슬플까요.....?
근데 나한테 돈만 써줘도 너무 고마웟다. 우리엄만 인맥왕이라 나랑다르게.한번나가면 새벽 5시까지 안들어올때가 많아.엄마가 날 돌볼의무는 없는데. 동생은 아빠랑 영화보고 왔오 요즘 내가 잠을 못자서 7시에자고 3시에 일어나.그래서 혼나고 엄만 자기가 하루에 니때문에 밥상만 몇번을 차리냐면서 뭐라고했어.그나마 다행인건 나한테 집안일을 시켜도 하고나면 칭찬해주는거.아빤 설거지를 하긴하는데 나랑 동생이 있으면 나한테만 시켜.동생한테 ***라고하면 자기랑 오늘 나갔다왔으니깐 안해도된대.닌 오늘 했다고 하면 그거 한번한걸로 뭐 그러녜.그래도 아빠가 했어.끝내 동생한텐 물어도안보더라.동생이랑 난 ***.가없어서 동생은 원하는건 안해주면 아빠를 때리거나 머릴 치면서 놀아(?)아빠도 화를안내. 난 욕을해.거리낌없이.부모가 옆에 있든없든.엄마가 한번 물어보고 나가라고 협박하면 유일하게 같이 있는시간인 8시에 같이 밥먹으면서 드라마볼 때 혼나고9시에 쫒겨나서11시에 아빠가 엄마설득해서 들어가 그리고 어느날.난 드라마만 보면 짜증이 확 올라와.딴데를 틀어도 되잖아?근데 안틀더라 계속 그딴것만봐.***같이 *** 낳고 잃어버리고 피햐자코스프레하면서 재벌가'도련님'이랑 결혼해서 ***들 행복하게살고 악당역은 뒈지거나 거***되는.그래서 보기만 하면 욕이나와.그것도 심하게.근데 그 날 진짜 심하게 터져서 아빠가 나한테 집안분위기나 망치는년이랬어.항상이런일이 있으면 아무도 사과안해. 전부 모든일마다.나도 안 해 그리고 머리잡혀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아빠가 그때 목욕하려던 참이어서 위를 다 벗고 있엇어.그상태로 날 깔아뭉개서 손목잡고 소리지르면서 안경날아가게 때리고 쇠 빨래판으로 맞을뻔했어.아무도 다 쇼파에서tv만 봄.말리지않았지.그리고 잠바를 입은채 맞았고 그게 촛 자해하는 날.난 집에서 나간다고하고 나가기 직적에 그렇게된거라 잠바에 호신용이라 뻥까고 커터칼 넣고다님.그걸로 손목긋고.칼 변기 뒤에 숨기고.초라한 첫자해네.나13살까지 씻으면 그대로 나왔어.다 벗고 그럼 엄마가 라면을 처먹어서 ***이 저렇게 튀어나왔다고해.엄만 지말에 대꾸 안해주면 ***떨어.이젠 알아서 잘 가리고살아.***. 내 일기장.연필로 쓰면 바로 들키니까.근데 엄마가 장난식으로(?)다시 저기에cctv설치할까?이럼;;;소오오름. 어디에라도 어디에나 써도 쓰면 내가 누군지 바로 알 걸.내 그나마 가까운 주변은.모른척해줘.그냥 나랑 너랑 우리랑 비슷한 사람을 찾고 위로하고싶어. 근데.엄만 나갈때마다 폰이랑 잠바 놓고나가래 지가샀으니까 지꺼래.옷은 안 벗기는걸 다행인줄 알으래. 근데 난 겨울에도 쫒겨났어.계절이어떻든 시간이 어떻든. 매일 영하였어.
엄말 더 닯아가...내가 엄마랑 살면서 이상한 사고방식이 박힐까봐.이상한 고정관념들이 박힐까봐...인터넷으로든 친구들로든 빡댜가리 소리를 들으면서 까지.멀쩡한 착한 고정관념에 본능에 사고방식도 ***가 되었고...이상한게 더 나았을까...엄마가 나한테 한것 알려준거 그대로 머릿속에 변함없이 그냥 박았어야했을까...그럼 아무도 날 얕잡아 보진 않았을텐데....난 왜 이렇게 된걸까....차라리 이기적이 었으면...차라리 무관심 했었다면....공부에만 관심있고 착한척이 정도를 넘지 않았다면....난 멀쩡했을까...***년 소리를 들어도 지금보단 나았을까...조금 걱정이된다.후회가 밀려오고 조금 괜찮아질때 갑자기 찾아오는 괴롭힘과 상처 트라우마 환각 모든것이 망가뜨리고있어.모든사람 모든고민 다 껴안고 살겠지만.그래도....난 이전부터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걸 잘알아서 그래서.이기적이지 못했는데도 엄만내가 이기적이고 가식적이라고했지.착한척하지말라했지.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엄마 난 착하고 평범한 애가 못될것같아.난 이미 망가졌고 엄마가 말하고바란 평범한6학년은 못 됐어.평범한 중1도 못 될 예정이야.더이상 노력하기싫어.잘가.엄마도 나도 내가 엄말 점점 닯아가.... 고백하고싶었는데... D-5
엄마...내가 엄마가 바라는대로 공부한다고 밥 못먹고 학원에서 썩어줬잖아..ㅎ 니 자랑거리 만든다고 내가 썩어줬잖아..ㅎㅎ 근데 왜 니는 고기 쳐먹는다고 쳐 돌아댕기냐? 머리에 든게 없다쳐도..10억 쳐 날려서 아빠가 커버쳐준거 생각해서라도 대가리를 써야지 *** ㅜㅜ
수술하고 요양차 친척집이 있는 지방으로 와 있다 사실 9년전에도 부모님보다 더 내부모님같이 챙겨준 사촌언니와 사촌오빠이다. 몇일째 누워지내며 먹***고 하다가 어제밤 야식을 먹으며 대화하다가, 언제 고모댁에 함 가야하는데.. 언니 동생과 연락하냐,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과거얘기가 나오자 우울증약 먹었던거며 조금씩 내 속깊이 감춰둔 두려움과 마음의 문을 닫은 이유를 털어놨는데.. 오빠는 어릴때 심하게 맞고 자랐다며 나보다 힘든시절이 있었음을 얘기했다. 결국 이렇게 극복하고 잘사는 모습 보이며.. 상대로 하여금 미안했다 잘못생각했단 생각이 들게하는게 복수아니겠느냐고 했다. 근데 한번 쏟아놓고나니 조금씩 더 생각나서 이것저것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하다가.. 시집간언니네 아이를 보러 베이비시터로 일로써 다니는 너엄마에게 언니가 효도를 하는것처럼~ 말에서 내가 발끈하며 효도가 아니고 엄마의 도움을 받고있는거지 라고 했는데, 갑자기 말을 자르며 너지금 말을 하지말라고 했고, 내가 무슨 예측을 하며 상상을 한다니 그런 말을 하면서 얘길 이어가는데, 오빠가 화난것같아서 난 말을 하지않기 시작했고 조금씩 거리를 두고싶어졌다. 결국 오빠는 친척어르신중에 젤 좋아하는 분들이 내엄마아***고 했고, 오빠네아빠와 다같이 내언니 결혼식끝나고 뒤풀이로 울집에 왔을때 오빠가 어르신들있는데서 첨부터 투덜대다가 일찍 나오려하는데 내엄마와 내동생이 오빠맘을 이해해주며 잘가라고 배웅나와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친척어르신 얘기로 또 이어졌고.. 새벽까지 넘 긴시간 오빠만 계속 얘기하고 날 설득하려 한다는게 느껴졌는데 지칠만도 했다. 난 보기보다 복잡한 심정이고 몸도 맘도 아픈상태이다. 일단 건강을 회복하고 보란듯이 잘되서 가족이나 언니를 도와줄 일이 있으면 좋겠단 얘기를 하던데.. 난 엄마의 부탁으로 지금 친척집에 몇일째 요양하는 상태이고 돈없고 힘없는 존재이며 쓸데없이 자존심과 고집만 부리고 나이만 먹은 어린애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몇시간째 말하느라 고생한 오빠에겐 얘기끝나고는 오빠가 생각하는것만큼의 심각한정도는 아니야라고 했다. 평소 가족얘기 나오면 말을 아끼는데 이번엔 오빠가 얘기를 잘들어준다싶어 쏟아내었던 거다. 전문상담원이 필요할 정도로 오빠의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친척 중엔 딸셋 중 둘째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ㅜㅜ 그래서 깊이 이해해주지 못하고 드러난 상황에서, 그냥 너자신을 위해 용서하라고 한다. 난 모든게 다시 두려워진다. 이렇게 불행은 반복되는것같고 늘 참는사람만 참고, 지금 난 가진게 아무것도 없고 건강도 잃고 아무도 없다. 첨엔 너에게 그런일이 있어왔고 너감정이 그러면 일단 당분간 연락끊고 살아도 상관없을거라고 하며 일단 지금 너자신만 생각하라고 하던데.. 내가 완치가 어려워 평생관리해야하는 질병을 갖게됬음에도 여기서 건강부터 회복하고나면, 그이후의 생활 또한 나에겐 막막하고 두렵다. 난 독립한지 9년동안 모은게 거의없고 건강까지 망가져있어 도피결혼하기에도 지금은 무리인것같다. 나이는 거의 노산에 가까이 가고있는데 마음만 조급해져간다. 겉으로 속깊은 감정을 표현을 안해도 속이 많이 곪아있다.. 하지만 평생 내편이 되어줄 동반자를 얼른 만나서 시집이나 가고싶다. 내가 더 *** *** 되기전에 날 구제해줬음 좋겠다. 중 둘째
동생의 도박은 우리 가족을 사지로 몰아놓고 있다. 부모님의 전화가 반갑기보다는 또 무슨일이 터진건가? 하는 불안감이 더 크다. 평상시와 다른 시간대에 걸려오는 전화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겁이 난다. 부모님은 노후자금인 집, 카드론을 이용해서 모든것을 동생의 도박빚을 갚아주기 위해 쏟아부으셨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듯 다시 연락이 온다. 나도 이제 더이상 돈 구할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부모님의 울음과 깊은 한숨. 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없고. 죽어야 끝나는 도박. 엄마아빠의 노후를 망쳐버리고 우리가족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동생.. 동생이 죽으면 남은 빚은 전부 엄마아빠의 몫. 그냥 보험금 받을수 있게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잠깐 슬프겠지만, 속은 후련하겠다.
우연히 엄마의 옛날 일기를 보게되었어요 엄마는 꽃다운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셔서 많이 그리워하십니다 저에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아픔을 채우기위해 아빠를 사겼다고하더군요 근데 일기장을 보니 더 세세하게 엄마의 모든감정이 실렸더라구요 너무 눈물이나서 위로해주고싶더라구요 그래서 엄마를 안아주면서 이런얘기를 조심스레 하려하는데 엄마께 일기장에 대해 귀띔하는거 실례일까요?
애를 감당할 경제적인 여유도 환경도 안됐으면 낳지 말았어야지 왜 기껏 태어났는데 죽고 싶게 만들어 우울증인 거 같아서, 힘들어서, 죽고 싶어서, 정신과 한 번 가서 약물 치료라도 받고 싶어서 용기 내어 말했는데 정신과 가면 진료기록 남는다고 그럼 나중에 취업할 때 불이익 받는다고 가지 말라고 이게 엄마가 할 소리야? 엄마는 항상 그랬지. 내가 왕따를 당했을 때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서 말했는데 그건 너가 소심해서 내성적이어서 반에서 그냥 겉돈거라고ㅋ 그러니까 그냥 좀만 더 있으라고. 이딴 ***나 하고 말이야. 그리고 제발 엄마 아빠 일은 둘이 알아서 해결해. 중간에 나를 왜 끌어들여 나라고 뭐 이런 이혼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었나. 나도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었고 돈으로 걱정 안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었어. 그래 뭐 오빠랑 나랑 둘을 자기가 혼자 키우려는거 힘들었을거 나도 알아. 근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한테 뭘 해준게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 오빠가 나를 거의 학대수준으로 때릴 때 엄마는 한 게 없잖아. 내가 그렇게 전화를 해댔을 때 엄마는 무시하기 바빴잖아. 항상 오빠를 우선에 뒀으면서 이제와서 나랑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좀 그만했음 좋겠다. 엄마가 하는 모든 말이 이젠 나한테 압박으로 느껴지고 힘들다는건 엄만 모르겠지. 내뱉기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6살이 되는 여학생입니다~ 저희 집은 아빠께서 예전에 회사를 다니시다가 그만두시고 한 10년전부터 휴양지(?)와 관련된 사업을 하셨어요. 한 7년정도 하셨는데 그리고 세월호 사건 터지고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결국 파업을 하셨구요 빚을 꽤 지셨어요 저는 그거를 초4때 알았구요 그걸 들었을 때 저는 진짜 너무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그 아빠께서 하시던 사업이 되게 가족들과 추억도 많이 쌓았고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아빠가 혼자서 힘들게 하시다가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깐 너무 속상했구요..엄마한테 그얘기를 들었을 때 밤이였는데 너무 속상하고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는데 계속 눈물이 나고 하루종일 울다가 학교에 눈이 팅팅 부은채로 갔어요.. 그리고. 6개월 후에 아빠께서는 다른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빠께서는 지방에 내려가서 식당을 운영하시구요 . 사업은 생각보다 잘됬구요 식당은 맛집이라고 인터넷에 나오고 그렇게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중1때 학교에 있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유는 아빠께서 화상을 심하게 입으셔서 응급실에 있었던 것인데요 아빠께서 붕대를 잔뜩 감고 눈도 못 뜨고 계시는데 눈물이 끊임없이 나고 일주일동안 학교를 빠지면서 아빠옆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몇달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아빠가 퇴원을 하시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저랑 오빠랑 엄마는 서울에 살구 아빠 혼자서 지방에 ㄱㅖ십니다. 그리고 아빠께서 다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힘든 식당일이다 보니깐 아빠께서 허리를 많이 쓰셔서 허리가 아프시다면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요 아빠를 볼때마다 아고고 이러시는데 이 소리를 들을때마다 너무 슬픕니다 아빠가 아빠 건강도 챙기면서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가장이라는 큰 부담감때문에 일을 하시는게 너무 속상하고 죄송해요 오빠는 지금 23살이고 군대에 가있고 지금은 엄마랑 저랑 있어요 저는 아빠가 맨날 서울에 오실 때마다 제 책상에 용돈을 두고 가는데 그걸 보면 너무 감사하지만 너무 죄송해서 쓰기가 너무 그래서 계속 모아두고 있어요 어느날 아빠께서 친구랑 술을 마시셨는데 술에 취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딸 ~아빠가 못나서 여행도 못가고 잘 못놀아주고 괜히 고생만 ***고 이러시는데 너무 속상해서..방에서 숙제하는데 연필이 ㄱㅖ속 안 잡히는거에요 그리고 아빠가 다른 아빠들과 다르게 얼굴도 많이 못봐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우시는 거를 봤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우신 거를 봤어요 저는 아직도 그게 너무 기억에 남아서 아직도 너무 속상해요 저는 진짜 저보다 더 힘들고 그러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힘들다고 해야하나 그래요.. 물론 다른 아빠들도 다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서 항상 쉬지 않고 일하는데 저희 아***서 그런지 너무 속상해요 지금 저희집이 그냥 그냥 부족하지 않게 살긴하는데..저는 너무 속상해요.. 제가 이래서 빨리 어른이 되서 아빠랑 엄마한테 용돈도 드리고 아빠 여행 보내드리고 싶어요 아빠랑 같이 밥먹으러 가서 제가 사드리고 싶고 제가 대학생만 되도 열심히 알바하고 공부도 열심히해서 아빠랑 시간도 많이 보내고 싶어요 저는 공부를 해야하는데. 왜 이렇게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진짜 아빠가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 볼때마 너무 속상해요 제가 어렸을때 사진을 자주 보는데 아빠가 이렇게 젊고 표정도 좋았네 이러면서 생각하는데 아 저는 정말 너무 속상해요 아빠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빠 생각날때마다 우체국에서 편지써서 보내기도 하는데..아 정말 지금도 아빠 생각 나고..그 지방에서 지금도 혼자 계실 생각하니깐 얼마나 외로울까..이런생각도 들고.. 제가 글 엄청 못쓰는데 이렇게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께는 제가 이렇게 말씀드려도 아직 학생인데 뭘 이런걸 걱정해 그냥 친구들이랑 재밌게 지내고학교만 잘 다니면 되 이러시는데.. 부모님도 이제 자식말고 부모님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ㅎㅎ
모두 다 내 탓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부모님은 항상 나 때문에 싸우셨고 지금도 그렇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으니까 당연하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무조건 내 잘못이다. 항상 어릴적 부터 아***가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제일 편하니까. 이럴바에 그냥 태어나지 말걸 생각한다 공부 잘하는 오빠만 있었어야했는데... 오빠는 그래도 항상 날 챙겨주지만 차라리 집에서 내가 없어져야 집안에 행복이 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행을 가져오는 아이니까. 티내지 않고 항상 버텼지만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와 오빠의 폭력과 폭언 엄마의 무시를 달고 살았다. 일화를 말해보자면 1. 초등학교때 동생과 같이 귤을 먹으면서 아빠가 다리를 안마하라고 해서 안마하다가 귤을 까먹을 손이 없어서 귤을 까달라고 했더니 동생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좀 까달라고 말했더니 아빠가 갑자기 일어나서 씨끄럽다며 우리를 때렸다. 2. 수영장에 친구와 처음 가본 초등학생때 일이다. 차로 10분정도 가면 있는 수영장이였다. 수영이 끝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친구와 라면을 먹기로 했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1541같은걸로 전화했던것 같다. 근데 동생이 전화를 받았고 동생은 콜렉트콜 전화를 받을줄 몰라했다. 처음 수신호가 간 시간에 늦는다 말했는대 동생이 전해주지 않았는지 집에 들어가보니 아빠가 각목을 들고 나를 끌고가서 마구 때렸다. 그러다가 너무 아프고 죽을것 같아서 도망을 나갔다. 모르는 사람집 앞에서 한겨울에 맨발로 서서 도움을 청했다. 아주머니는 친절히 피가나는 발과 몸을 치료해주셨고 다음날 집에 돌아가라고 타일러주셨다. 물론 난 너무 싫었다. 밖에서 서성이다가 한밤중이 되었다 그때 난 아마 민소매에 맨발이였던것 같다. 오빠가 나를 찾으러 나와서 내 머리를 잡고 끌고갔다. 어린 나는 싸대기를 몇번이고 맞고 또 맞고 잠들었던것 같다. 3. 고등학교 3학년때 일이다. 나는 항상 기운이 없고 살*** 하는 생각이 없어서인지 공부든 뭐든 열심히 하지 않았다. 대학도 가지 않고 돈벌어서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그런 내가 맘에 안들었는지 욕을하고 무시하고 폭언을 때려부었다. 결국 나는 대학을 가야한다면 2년제에 들어가서 돈이나 빨리 벌자 싶었는데 아빠랑 엄마가 우기고 우겨 지원한 4년제 한곳에 덜컥 붙어버린것이다. 나는 2년제에 가고싶다고 말했으나 엄마와 아빠는 참한 어른인척 하며 나를 다독였다 4년제가서 넓은 세상을 보라나 뭐라나... 결국 무서움에 못이겨 4년제에 들어왔다. 다행인것은 집과 멀다는점이랄까 억지로 간 대학치고는 집과 멀어서인지 너무 좋았다. 떨어져 지내니 가끔 가족들도 나쁘지 않다는 착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하시는 자영업의 인력난으로 휴학을 해야했다. 다른이들은 학업. 여행 등으로 휴학을 할때 나는 부모님의 일을 돕기위해 휴학을 했다. 집에 오니 예전에 있던 우울증과 히스테리가 점점 다시 시작되는것 같다. 남자친구에게 자꾸 화풀이를 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가족들과의 트러블보다는 내 자신의 멍청함이 답답함이 나약함이 싫어진다..
저는 올해 15살인 한 여중생입니다 저는 저희 가족이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것은 알고있었다만 오늘 아빠께서 하시는 통화를 우연치않게 듣게되었는데 아마도 빚에 관련된 이야기였던거같습니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시는데 아마 초기에 지인에게 빌린돈을 말씀하신것같았어요 전부터 저희부모님은 일하느냐고 바쁘셔서 하루에 한끼도 겨우 드시는 상황이 종종발생했어요 그래도 저와 제동생은 잘 챙겨주시고 마음이 따듯하신 분들이에요 빚이있지만 저희 학업에도 힘써주시고 옷이며 신발이며 모든것들을 부족하지않을만큼씩 잘 챙겨주시죠 그런데 가끔 아빠가 새벽에 힘드신마음에 슬픈노래와 술을 드세요 그럴때마다 그냥 저는 제공부를 하기바쁩니다 왜냐면 이상황을 피하고싶어서요 ***지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기싫었어요 그런데 예전에 한번 아빠가 저에게 이사업을 다 정리하고 강원도 시골에가서 한방에서 가족이서 살면 어떻겠냐는 말에 저는 단번에 싫다고 말해버렸고 지금 이상황이 좋다 라면서 철없이 대답을 한적이 있었는데 오늘 통화에서 전화거신분이 심한말들과 이럴거면 정리를 하시라는말에 아빠는 자주겪으신일이신지 잘 넘기셨습니다 저희 엄마는 정말 강하신 사람이신데 저는 모를때 가끔 너무 힘드신지 우십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말한 그 철부지없는 말이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도 물론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주변인들이 너무도 좋고 여가시설 등 모든것이 저에게 잘 적응되있기 때문이기도하고요 그런데 저의 행복을 추구하겠다고 아빠와 엄마를 고생시켜도 되는지 의문이 들고 괜히 저에 그 작은 소신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건강이 나날히 안좋아지는걸 보면 볼수록 저도 힘들고 저희가정의 분위기만 나빠지는것같습니다 이럴땐 어떻해야하나요 제가 함부로 나서서 말할수있는부분이 한개도없어요 동생은 당연히 이사실을 모릅니다 이건 저 혼자만 알고 정말 힘들어하는 사실이에요 이러한사실들을 정말 매일 고민하고 힘들어합니다 15살밖에 되지않았는데 저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때마다 너무 힘듭니다 ..
저 중학교때 이혼했는데 떨어져 살다가 엄마가 혼자 자식들 키울 수 없어 다시 합쳤어요. 똑같은 문제로 싸우며(성격차이,아빠의 알콜중독, 아빠의 건강문제) 살다가 다시 이혼하기로 했는데 그냥 이혼했음 좋겠다 생각하며 살았는데도 막상 정말 한다니 머리가 멍하네요. 제가 올해 결혼 준비 할 예정이라 엄마가 결혼할때까지 참는다 했는데 그건 제가 반대했거든요. 저때문에 엄마인생 더 힘든건 못보겠어서.. 근데 상견례며 결혼식이며 이혼가정은 어떻게 진행하나요? 이와중에 제 앞길 생각하는 저도 참 이기적이네요.
현재 우리 가족은 아***와 어머니가 각각 개인사업체를 가지고 계시고 돈도 생각보다 많이 버시고 인맥도 넓어서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내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어렸을 적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부모님의 말이 정답인 줄만 알았던 한 아이였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 두 분 그리고 내 위로는 누나 한 명이 있었고 그렇게 다복한 가정은 아니였다. 내가 태어나기전 우리 아***는 유명기업에 간부급으로 잘 나가는 분이라 하셨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년도인 1998년 IMF와 함께 아***는 더 이상 수입을 버실 수 없었다. 나는 태어날 때 부터 내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에게 쓸모 없는 ***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와 아***는 매일 밤늦게 들어오셨다. 8살때부터 밥 짓는 걸 제외하고 혼자 다 모든걸 해야했다. 저녁을 누나와 두명에서 밥솥에 칙칙한 밥을 항상 먹었던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난 사고뭉치였으나 공부와 운동 , 책읽기를 전부 다 하는 그런 아이였다. 어쩌면 부모님이 없는 그 시간에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다 사고를 쳤다하면 아***는 날 사정없이 팼다. 더 웃긴 점은 내가 맞고 울면 울음소리가 자신을 짜증게 한다는 이유로 날 더 때렸다. 그때는 두들겨 맞다가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갔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 난 울음이 올라올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혼자 조용히 흐느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흐느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에서 물만 흘린다. 그것이 습관이 되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그리고 항상 나를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말과 함께 두들겨패던 아***의 뒤로 누나는 날 보면서 한껏 비웃었다. 내가 10살 쯤 되었을때 아***는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돈에 허덕일 일이 없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잘 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전에는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 없는 나를 매질했다. 그때 도망갈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 책이었다. 책은 나에게 유일한 도피처이자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았다. 무엇인가에 홀린듯 읽어대는 나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었다고 후에 누나가 이야기했었다. 12살 태권도 3품 심사를 봤을때 우리가족들은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보러오지 않았다. 뭐...당연했다. 이미 12살때 내 몸은 다 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어른과도 같았던 것 같다. 그날 밤 너무 서운해서 한번 쯤은 와줬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 했다가 부모님들에게 돈은 누가 버냐고 니가 벌어올거냐는 말과 함께 마구잡이로 맞았다. 그때부터 나의 유쾌하고 의리있는 성격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을 믿지못하는 의심병이 함께 생긴것 같다. 중학교를 들어가서 별 일 없이 지나가는가 싶었지만 나의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는 아***의 폭력과 구타에 짓밟혔고 업친데 덮친격으로 어머니의 마이스터 고등학교 진학 거부때문에 강제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그때부터 가족들과의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를 끊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은 사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 부모님은 365일 그렇게 3년 내내 아니. 중학교 3학년이 끝나는 그날까지 매일 싸웠고 매일 자고 있는 나를 깨워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유 만으로 날 두들겨 팼다. 아***는 술취해서 밤 늦게 들어오고 어머니는 매일 그 모습을 욕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난 끼여서 이리저리 방황했다. 내가 가고싶지도 않은 고등학교 진학으로 성적은 당연스럽게 떨어졌다. 내가 왜 해야하지? 라는 의문과 함께 모든 걸 내려놓고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 빨려들어갔다. 그러자 우리 가족들은 내가 ***거라며 다른 애들을 비교대상으로 나를 *** ***로 만들었고 살*** 필요가 없는 쓰레기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문을 닫고 대화를 끊은 나는 그들이 뭐라하든 단 한마디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너무나도 힘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건 다름아닌 참된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매우 유쾌하고 재밌었으며 어쩔때는 욕을 아끼지 않으시는 멋진 은사님이셨다. 그로 인해 난 어려운 사람을 돕기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꿈꿨으나 이전에 성적이 너무나도 좋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원하지 않은 대학교 경영학과를 들어가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결국 난 재수를 결심했다. 그러나 이후 치가 떨리고 피를 토할것 처럼 열심히 한 나에게 어머니의 배신은 이어졌다. 등록금을 넣지 않고 나 몰래 넣었던 다른 학교를 알려주며 이미 말 끝났다고 저긴 미래가 창창하다고 무사히 졸업해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말했다. 자살하고 싶었다. 말도 안됀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싶었던 꿈은? 미래는? 그냥 어머니의 장기말로 전락하는 이 순간 난 망설임 없이 목을 맸다. 물론 죽진 않았고 잘 살아있다. 그 자살기도로 어머니는 나보고 의지도 없는 한심한 놈이라 말했다. ***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닌데. 아***는 내가 다 크자 이제와서 친해져보자고 이전에 서운한건 다 잊으라고 말하며 나와 같이 술을 마실걸 권했다. 같이 술을 마시다보니 이전에 담아뒀던 화가 치밀어 오르며 서로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결국 아***는 내가 그만 라자고 말하는 걸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려 하다가 내가 휘두른 소주병에 맞고 병원에 실려가셨다. 가족은 전부 다 나보고 뭐라했지만 난 전혀 개이치 않았다. 엄마는 매일 "우리는 가족이야!" 를 외쳤지만 나에겐 힘들때 내 옆에 있어준 친구들 아니 나의 게임 캐릭터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대체 그렇게 아우성치며 나를 존중해달라 했던 그 시절의 날 무시하고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까? 이미 닫긴 마음의 문을 당연히 열 생각은 없고 내가 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돈을 벌기시작해 혼자 살기시작한다면 연을 끊고 살 것이다. 부모님들이 늙고 병들어서 나에게 의존하게되고 자신들이 일어설 힘 없어질때 비로소 나는 빛나는 것이다. 나보다도 심한 가정에 산 사람도 많으니 그런 사람들에 비해 난 부족한것 없이 살아왔다 생각한다. 내 가족의 이야기는 이 정도 까지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때부터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다. 이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당한 일들이 가정폭력이고 학대였다는 것을 깨닫고있다. 잠들면 내가 죽기 직전까지 맞고있던 순간이 펼쳐진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냥 숨쉬기 힘들만큼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렇게 잠에서 깬다. 수년간 참고 참았던 순간들이 이제와서 터져나오듯 머리에 떠오른다. 아무일도 기억 안난다는 엄마 앞에서 나는 내 기억들을 꺼내고 따질 수조차 없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는게 편할까 싶어진다.
나보고 교양 쌓으라면서 본인이 더 교양 없는 것 같네. 교양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사람 꿈을 짓밟고 살아? 나보고 눈치를 키우라며. 눈치 X나 없다고. 본인이나 눈치 키워요. 내가 지금 X나게 열 받은 상태인가 아닌가. 아니 그냥 입 다물고 사세요. 솔직히 얼굴만 봐도 역겨워. 내가 윤리에 따라서 지금 참고 있는 것뿐이지 솔직히 말하면 혈육이고 뭐고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으니까. 신경 쓰는 게 내 성적밖에 더 돼? 본인을 나한테 투영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