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그냥 아파.. 마음이 아픈건지 심장이 아픈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어 내 팔에 있는 줄 몇개가 흉터로 남을것같아 그리고 나는 찍히겠지 '얘는 자해한애야. 다가가지마' 라고 무섭잖아.. 그래서 나는 또 웃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 내 가면을 벗으면 내 주변이 휑해질까봐, 아무도 남지 않을까봐 너무 무서워
아프다 그냥 아파.. 마음이 아픈건지 심장이 아픈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어 내 팔에 있는 줄 몇개가 흉터로 남을것같아 그리고 나는 찍히겠지 '얘는 자해한애야. 다가가지마' 라고 무섭잖아.. 그래서 나는 또 웃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 내 가면을 벗으면 내 주변이 휑해질까봐, 아무도 남지 않을까봐 너무 무서워
미칠 거 같아ㅠ퓨ㅠㅠㅠㅠ 아니 이미 미쳤나바 쉬는 동안에도 대인관계 성적 진로 고민 때문에 그리고 남에 비교하여 한심한 나 자신 때문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아픈게 사라지면 계속 눈물이 나오고 공허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못하겠어ㅠㅠ 너무 미안하다... 요즘 나만 신경쓰고 예민하게 구는 거 같아서 진짜 병원을 가봐야할까? 이 생각만 계속 하고 있어 ***ㅏㅏㅏㅏㅏㅏㅏ
나 좀 안아줘. 힘들어. 이젠 밥먹고 씻는게 다시 힘들기 시작했어. 진짜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힘들어. 저번보다 더 힘들어. 도와줘. 나 공황발작 계속 와. 어떡해? 이젠 공황발작까지 생겼어. 어떡해 나 너무 무서워 불안해.
모든게 다 무기력한 날 죽고 싶지만 죽는게 무서운 짜증나는 생각 팔은 또 빨개지고 아프고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날 우울함이 날 덮쳐오는 날 이땐 대체 뭘 해야하지 그래, 그냥 가만히 있자 다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 우울이 다른 사람에게도 점연될수도 있으니
사람들은 저의 외적인 것만 보고 부럽다 하네요 내면은 숨막히고 괴로운데... 겉면으로 보면 미국 시민권자, 4년재 대학 졸업, 졸업 후 취업, 눈코 성형 해서 나쁘지 않은 외모, 미국에서 정원있는 2층집 살고, 재혼 부모님 자산 중산층, 잘난 엘리트 언니 등 하지만 과거 부터 지금까지 매일 머릿속으로 저를 죽이고 죽고 싶단 생각일 매일 해요 어디서 부터 말을 해야 하는지... 저는 5살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엄만 할머니가 부자 남편을 만나야 한다 강요해서 부자라고 속인 남자와 결혼했죠 하지만 거짓이였고 도박에 학대에.. 엄마는 참다가 제가 5살때 이혼 했어요 저의 어릴적 첫 기억은 지금은 없어진 금호동 달동네에요 그때 엄만 학원 국어 선생님으로 달 70만원 받았데요 할머니 기와집? 에 얹혀 살어서 3평정도의 작은 방에 언니 저 엄마 살았어요 집이 가난해 따돌림 당했고 금호 초등학교가 2001년때 밥차라고 해야하나 엄마들이 당번을 돌아가면서 각 반에 밥차를 가져가서 애들 배급해줬는데 저희 엄마는 못오시니 제가 애들 밥퍼주기도 했죠 선생님도 많이 때렸고요 4년 후 엄마는 논술 과외도 하시고 점차 제정적으로 안정이 되실쯤 이모가 이혼하셨고 이모 몰래 전 이모부가 이모부 이름으로 대출 받아 산 집이 있는데 혼자 도저히 감당이 안됀다고 해결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에 엄마가 갖고 있는 돈과 대출을 받아서 용인 쌍용아파트로 같이 살게 됐어요 저는 9살때 처음 놀이터를 알았어요 처음 그 집에 갔을때 여긴 천국인가 했죠 그렇게 지내다가 언니가 엄마에게 큰 얘기를 합니다 제가 왼쪽눈이 안보인다고요 저는 기억이 안나는데 7살쯤 언니가 저와 병원 놀이 하다가 시력을 재는데 왼쪽눈이 안보이는 걸 알았데요 근데 저는 언니에게 엄마 지금 넘 힘드니 숨기자 했다네요 제정적으로 안정이 됐다 생각 한 언닌 비밀을 2년 동안 간직하고 제가 9살때 엄마에게 말해버렸죠 즉시 아주대 병원에 갔지만 이미 늦었다고 눈의 병이 퍼지기 전에 적축해야 한다는 말에 엄만 아니라고 서울대 병원에 저를 대리고 가셨고 거기서 코츠병이란 이름을 알게됐죠 다행이 퍼지는 병은 아니라네요 그 병을 알게 된 얼마 후 저의 왼쪽눈이 너무 빨개졌고 눈병인줄 알았는데 서울대 병원에 가니 나쁜 물이 차서 그런거라고 해서 물빼는 수술을 했어요 저의 첫 수술이였죠 퇴원하고 눈에 보호대?를 하고 학교에 가니 그때 터미네이터가 한참 유행이라 다들 저를 보고 놀렸었어요 인조 인간 같다고 저는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왕따였습니다 이모가 미국인과 결혼하셔서 중학교는 용인 동백지구로 이사가서 백현중학교 1년 반 다녔죠 근데 중1 내내 왕따였어요 슬슬 익숙 해졌죠 다행히 중 2때는 학원 친구랑 같은 반이라 한학기 편하게 다니다녔어요 월 70만원 벌던 엄마가 논술 과외로 월 1200만원 벌게 되니 없던 아이였던 저는 자랑할게 그것 밖에 없었고 당연히 다른애들은 절 싫어했죠 그때 생각하면 저도 참 어렸고 멍청했구나 해요 저는 이모가 떠나신 후 항상 혼자였어요 엄만 점심부터 밤까지 학원에 계셨고 밤부터 새벽까진 고등학생 과외를 하셔서 엄마를 보는건 아침 학교가기 전 뿐이였어요 나이 차이 있는 언닌 고등학생이라 저랑 마주칠 일 없었고요 텅빈 집에 혼자 밥먹고 혼자 티비보고 혼자 학원가고 그게 익숙 해졌죠 전 항상 혼자였으니깐요 이모부가 엄마에게 이모부의 동료를 소개 해줬고 그 남자분이 평택 미군부대 안에서 일하셔서 엄마랑 저는 평택으로 와서 같이 살게 됐어요 언닌 성인이라 평택올땐 이미 독립 했고요 저는 모르는 남자가 한집에 있었고 엄만 고등학생 과외를 하다보니 밤마다 나가셨고 엄마가 나가면 이 남자는 잠깐 나갔다 온다 하고 밤늦게 까지 안왔어요 솔직히 전 편했죠 모르는 남자랑 있는게 불편했어요 말도 잘 안통하는 백인이였고요 다행히 단독주택이라 제가 2층방에 있었지만 먹을때 빼곤 안내려가고 항상 방문을 잠궜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엄마가 말해주길 엄마가 일간 동안 동남아 젊은 여자랑 놀러다녔다네요 나중엔 정신 차렸지만 그땐 정말 못쓸 남자였죠) 1년동안 평택에 있는 한광 여중을 다니며 착한 친구를 사귀고 그게 제 맘에 안정을 찾는듯 했어요 근데 엄마가 슬슬 미군부대에 있는 학교를 다니라고 억지로 저를 넣었고 저는 졸지에 영어 하나도 못하는데 미군 자녀들과 학교를 다녔어요 저는 계속 혼자였어요 영어를 못했거든요 한국계 애들도 있었지만 말을 잘 못걸었어요 2008년에 저는 왼쪽눈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아팠죠 새아빠란 인간은 문병 한번 안오더라고요 아 물론 언니도 바빠서.. 8인 병실이였는데 엄마는 일가서 수술하는것도 저 혼자 들어갔고 잠에 깼는데 왼쪽눈 수술했는데 오른쪽 보이는 눈도 안보이더라고요 화장실 가고픈데 더듬 거리고 있으니 다른 아주머니들이 도와줬어요 너무 서러워서 수술해서 울면 안돼는데 펑펑 울었어요 난 아무도 없구나 하고요 그렇게 1년반이 지나고 새아빠가 용산 미군부대에 일을 구하셔서 ***동 UN 빌리지로 이사갔어요 (미군에서 돈나와서 좋은 집을 공짜로 살았습니다 물론 전기값은 별개) 거기서도 왕따... 러시아와 한국 친구를 사겼지만 질이 나쁜 친구였고 저도 좀 물들었어요 저는 거의 병풍이였고 개네들이 ***면 이것저것 하는 나가리였습니다 그때 엄마가 혹시 미국가면 제 눈이 나아질까 해서 새아빠를 계속 쪼아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았어요 이 모든걸 3년만에요 시민권은 하와이에 일주일 들려서 받았습니다 (저는 법을 잘 모르는데 미국인이 보기엔 한국은 외국이고 외국에서 일하기 때문에 미국에 안살아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네요) 엄마는 재혼후 일을 슬슬 줄이셨고 일주일에 3일정도 그때부터 엄마처럼 행동하셨어요 하나하나 간섭하고 전부터 화나면 주체를 못하시고 때리셨는데 집에 계시니 제 하는 꼴이 맘에 안드셨나봐요 자주 맞았어요 저는 울면서 반문했어요 왜 이제와서 엄마 행세 하냐고 난 10년동안 혼자였고 혼자 생활했고 방치 된체로 스스로 컸는데 왜 이제와서 모르는 외국 남자가 있고 엄만 집에 있어서 날 괴롭히냐고요 엄만 다 널 위한 선택이라 하시는데 저는 숨막혔습니다 전 10대 이전 부터 혼자였는데.. 언니는 항상 바뻤고 엄마도 바빴고 친구도 없었는데 이제 정체성이 생기려는데 왜 하필 지금..이러고요 새아빠한테 고마웠던것 하나는 엄마가 절 때리니 막 화내면서 이거 아동학대다 한번만 더 때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해서 그담부터 2층 제 방에 문잠그고 때리다가 점점 줄더라고요 전엔 습관처럼 볼때 화내고 때렸거든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물어보니 엄마가 저랑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서 제가 잘못된걸 바로 잡으려다 보니 마주칠때마다 때리고 화낼 수 밖엔 없었데요 근데 제 입장에선 짧은 시간 마주칠때 마다 맞으니 엄마가 싫었었어요 이 새아빠란 인간은 한곳에 못있어 해요 용산 미국 고등학교 다닌지 1년만에 하와이로 이사했어요 물론 놀랍지도 않게 거기서도 왕따였습니다 왼쪽눈이 안자라서 양쪽눈이 심하게 짝짝이라 하와이 가기전에 쌍수 했는데 너무 티나게 했는지 가자마자 뒷말이 많았어요 혼자 꾿꾿이 버티고 졸업했고 새아빠가 텍사스에 일을 구하셔서 (이동하는걸 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ㅡㅡ) 저도 여기서 대학을 다녔어요 대학교에서도 당연히 왕따 입니다 18살 합법인 그때부터 담배를 시작했는데 여자가 담배핀다고 쌍수한거 티난다고 여자애들이 그리 까더라고요 앞담을요 우울증을 계속 앓아왔는데 제가 대학 2학년때 아빠가 하와이에 또 일을 구하셔서 이동하십니다 1년 계약이라 다행히 텍사스 집은 안파시고 가셔서 제가 살았어요 너무 우울해서 죽고 싶다 할쯤 아시안 동아리가 눈에 보였고 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됐어요 저에겐 너무 소중한 친구라 매번 요리하고 운전해줬는데 그 애들은 저를 그저 이용만 했어요.. 우울증이 끝까지 차올라 저는 새아빠가 선물해준 권총을 제 머리에 겨누기도 했는데 머리 터진 시체를 치우는 경찰과 구급대원들에게 나쁜 기억을 주기 싫어서 부모님이 먹는 수십가지 약을 입에 쳐넣고 수면 유도제를 한통 다 까서 먹고 피가 빨리 돌게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고 옷을 입은체로 들어가 눈을 감았어요 재수 없게 일어나 보니 물은 식어있었고 살아있더군요 욕조에 아직 안녹은 약물들을 바로 다 토해 냈어요 머리도 아프고 손도 떨리고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또 물을 받고 약을 또 뒤지고 눈을 감았는데 일어나더군요 *** 죽는게 이렇게 어렵다는걸 알고 밤새 깨질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년 뒤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졸업을 앞둘쯤 새아빠가 이번엔 대구에 직장을 구하셨어요 1년이래요 졸업을 하고 실헙실에서 일하기 싫어 졸업 직전에 따둔 약사 보조사 자격증으로 미국 약국에 취업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만 해도 할 수 있는 직장이라 페이는 적어요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미래도 없고 물론 사랑도 새아빠랑 엄마랑 10년동안 싸우고 던지고 난리치고 한걸 보니 저는 도저히 연애건 결혼이건 못할것 같아요 마음이 닫혔거든요 얼마나 지독하게 싸우냐면 물건이 휙휙 지나가고 깨지고 둘다 성격이 드세서 엄청 쩌렁쩌렁 싸워요 ***도... 그걸 10대때 계속 들었어요 숨막히고 죽을것 같았어요 지금은 서로 잘 지내는것 같은데 전 아무렇지 않지 않아요 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그 싸움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미국에 있는것도 곤욕입니다 10대에 넘어와 저는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모르겠고 한국에선 미국인 취급 미국에선 한국인 취급 영어가 익숙해지지 않아요 10년이나 살았는데... 너무 힘들어요 같은 공간에 있는데 저만 혼자인것 같아요 일할때도 숨막히고요 가족만 생각 하면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혼자인 삶이 너무 익숙해 친구던 동성친구던 만나고 싶지 않고 장애는 너무 괴롭고 점점 왼쪽눈이 줄어들어요 안쓰다 보니 퇴화하는건 당연한데 엄마가 생각하길 미국은 선진국이니 좋은 의사를 만날거라 했는데 무슨... 제 병명을 처음 들어보고 저를 가지고 갖갖이 실험을 하더군요 이 의사 저 의사 다 불러들이고.. 저는 실험실의 쥐 같은 느낌이였어요 그래서 의사을 안본지 몇년 됐네요 종종 왼쪽눈의 뒷쪽이 ***듯 아프고 가렵고 괴로운데 약도 없다네요 언젠간 눈 적출을 해야한단 공포감.. 무력한 삶 이걸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엄만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고 새아빠랑 결혼하고 딴 여자랑 놀아난것을 참은것도 다 날 위해서라 하시는데 (지금은 늙어서 정신 차리셨어요 전엔 툭하면 이혼해 하고 *** 했는데 이젠 늙어서 싸우다가 엄마가 이혼 하자 하면 순간 음찔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안정적인 삶이 깨질까 무서워 진거겠죠) 저는 그렇지 않아요 엄마가 힘든시간 저도 같이 보냈고 나이는 만 23살이지만 모든 삶의 고통을 다 느껴본 기분이에요 아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고 이번에 계약 연장으로 1년정도 더 있으실거레요 내년까진 집 걱정은 덜었지만 새아빠 딸 아들 즉 저의 새 언니 새오빠가 새아빠를 쫀데요 니 딸도 아닌데 왜 집 내주냐고 근데 이것도 오해인게 집 팔라 했는데 새아빠가 아끼는 스포츠카랑 가구들 맡끼는 비용이 집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비쌌고 집 렌트도 고려 하셨는데 남들 집 *** 만들게 뻔해서 저에게 맡긴거거든요.... 저도 독립하려 돈을 모을레도 집 월세가 1000불 넘고 전기값 물값 보험비 700불까지 하면 지금 직장 월급으론 불가능해요 월급은 시급이라 변동이 있지만 세금 11프론가 때면 대략 1200불 정도에요 직장 페이도 ***고 돈은 모아야겠어서 하루 한끼 먹으면서 살아요 일단 죽으면 안돼니 죽으면 가족이 일단 슬퍼 할거잖아요 그리고 자살 시도로 인간이 쉽게 죽지 않는단걸 알았고요 급 생각 난건데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례식 비용이다 뭐다 생각해서 생명보험 들라 했는데 고등학교때 정신과 상담 받은 이력때문에 거절 당했네요.. 또한 전 돈이 없는데 나중에 눈 적출 문제가 생겨 수술 해야되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 돈이 없어서 걱정이 되요... 저는 미국인이 된걸 감사하지 않아요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긴 시간 미국에 살아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고 미국인이기 때문에 언젠간 미국으로 돌아와야 하고요 희망을 갖고 살아야 되는데 걍 숨쉬니 사는거 같아요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저의 외적인 부분만 보고 부러워 하는데 저의 삶은 쓸쓸하고 괴롭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는 빈곤층이고요 말주변이 없어 이야기를 잘 못하는데 제 삶은 드라마 같아요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평택 한광여중 친구들도 제 이야기를 들으면 드라마 한편 나오는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저에게 부럽다 하면 이 이야기를 해줘요 삶이 하나하나 고통스러웠다고... 저는 걍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한 가족에 온전한 몸상태 돈이 많지 않더라도 하루 하루 소소한 소확행이 있는... 겉모습만 좋지 속은 썩은 저같은 삶 말고요 왜 저는 평범한 삶이 허락되지 않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시련이 있을지 무서워요 이것도 이겨낸척 담담한척 하지만 하나하나 너무 큰 못으로 박혀서 빼지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미쳐 죽을 것 같거든요
이제 숨기는 건 그만두고 나대로 살아야 할텐데.
불안하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좋아하는것도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어떻게 하라는 거죠?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살기 싫다 난 왜 살지?
친구들한테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힐러라는 소리 들을 정도로 내가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데 정작 난 내 마음 하나조차 치유하지 못한다. 난 내가 가식적이고 초라하고 추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가면을 벗을 수가 없다. 영원히.
오래전 헤어진 연인,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주변 인간관계가 산산조각이 난 이후 수년째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몇년 전부턴 더 이상은 제가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한 통원 및 약물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제대를 하였는데 군부대 내에서 제대로 된 여건 보장이 안되어 기존에 받아오던 치료를 받지 못하여 우울 및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점차 심해져 결국 야간에 팔목을 수어번 긋고 발작을 일으켜 국군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하였었고, 그곳에서도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자해를 하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 결국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자해를 하기 시작한 이후 부터는 스스로 자해에 대한 허들이 낮아졌다 느끼게 된 건지 지금도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할 때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칼로 팔목을 수십번씩 긋는 등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삶을 정상궤도로 돌려 놓기 위해 일도 시작하였고 꾸준히 친한 사람들도 만나며 즐거운 시간도 보내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행하단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약은 이미 하루에도 매일 18~20알씩 복용하고 있는데도 컨디션 조절이 힘들고 끝없는 상실감과 공허함만이 절 집어삼키는 기분입니다. 엊그저께도 개인적인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충동적으로 과도로 팔목을 여러번 그었습니다. 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삶이 너무 공허하고 우울합니다. 사랑을 받고 싶지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무너져내리면 그 때야말로 끝일 것 같습니다. 슬픕니다, 너무나. 죽음이 가까워집니다.
전 여느때와 달리 일하고있었어요...근데 한 손님이 오더니 제가 8살때 저한테 나쁜짓을 했던 할아*** 인상착의랑 똑같이 입으신거예요...60대도 똑같고...그래서 무서워가지고 벌벌 떨었었습니다...하다못해 다른 이모가 계산해주셨어요...트라우마 어떻게 고칠까요....??
무기력증 어떡하죠.. 커피도 다섯잔먹고 운동도하고 에어컨도 틀었는데 여전히 기운이 없어요 갈곳도 있고 해야할일이 많은데 엄두가 안나네요
사소한것에서 죽고싶다라고 생각이 넘어가는 순간이 제일싫다 일하기싫다에서 죽고싶다로 저사람은 말을 왜 저렇게하지에서 죽고싶다로 돈을 왜 이만큼밖에 못 받지에서 죽고싶다로 나는 왜 이렇지에서 죽고싶다로
그냥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렇게 잘못한것도 없는데 나 자체가 잘못된것같고 상담도했고 약도 먹었는데 자꾸 주변사람들 힘든게 보여서 내얘기 꺼낼수도없고 힘들때마다 전화해서 귀찮게 하기도 싫다 그냥 내가 없는게 제일 좋을것같다는 생각만들고 중고등학생때는 옥상가서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날 기억못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 죽는것도 어렵고 사는것도 어려워서 살고는 있는데 진짜 죽고싶다 스위스가서 안락사 하고싶어
아 더워죽겠어요 물만보면 뛰어 들어가고 싶어요 밥맛도없고.. 뭐 재밌는 일 없을까요
정말 무엇부터 써내려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저는 우울증때문에 매우 힘든거같습니다. 아마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학창시절 설문조사에서 안좋은 결과로 Wee 클래스에 끌려다닌거보면 정상은 아니였단말이니까요 그리고 거기서도 당연히 답을 찾지못하고 그대로 어른이 되었기에 아마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무엇때문에 제가 우울한지 힘든지도 자세히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잡생각이 머리에 가득차고 우울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왜 우울한지도 내가 무엇때문에 이런 생각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간절히 개선을 원합니다. 솔직히 죽기 싫어요.. 그런데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무언가가 저를 자꾸 꼬드기내요. 편해지라고.. 차라리 제가 정말 이기적이였으면 친구건 가족이건 걱정하라고 떠벌리고 다녔으면 적어도 치료라도 시작했겠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제 친구들과 가족들을 너무 사랑하기에 차마 힘들다, 살기싫다 이런 얘기를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 끙끙 앓은지도 이제 7년이상이 되어가내요. 한계입니다. 그리고 저의 현재 상황을 대강 말씀드리면 타지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써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요. 상사분들도 잘해주시고 야근 특근을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셨을땐 참 좋은 환경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 외롭고 우울해서 힘들고 지칩니다. 이해가 안가실수도 있어요. 그렇게 좋은 환경인데 뭐가 힘들지? 싶으실 꺼에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분명 좋은 환경인데 날이 가면 갈수록 우울증 증세가 악화되요. 정말 미칠꺼같습니다. 타지에서 친구도 없이 혼자 생활해서 그럴까요? 아니면 제가 그냥 나약한걸까요? 제가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는 이유 중 가장 첫번째로 생각나는것이 힘들다고 말했을때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은데 그게 뭐가 힘드냐라는 말이 돌아올까봐가 제일 무서워요. 맞는 말이잖아요.. 너무 힘들어요.. 제 성격때문에라도 도저히 아는 사람께는 도움 요청을 못하겠어요. 저 정말 개선되고 싶어요.. 성격도 좋아지고 인생이 활기가 넘치고 싶어요. 근데 이제는 점점 편안해지고 싶을때가 더 많아져요.. 제가 저의 위기를 감지한것만 같아요. 이제 갈때까지 갔구나 싶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혹시 저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분이나 저한태 개선방안을 알려주실분..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누구도 없는 무멋도 없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나의 두눈에 아무것도 스치지 않는 공간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영원히. 날 짓누르는 이 더러운 공기들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 영원한 지옥속에 쓰러진 나를 끌어 나를 묶어둔 이 족쇄를 풀어 죽어가는 나를 끌어 저곳으로 안내해주길. 날 억누르는 이 짙은 공기들을 헤쳐주길. 나만이 존재할 나만이 숨쉴 나를 감싸는 공기만이 존재할 저 너머로 날 데려가길. 영원히 잠들고 싶다. 미쳐가는 나의 두 눈에 점차 흐려져가는 안개 뒤로.. 그 평야에 누워 그 바람에 내 몸이 찢어져 흩날리며 잠들고 싶다. 간절히.
우울증약이 의외로 잘맞아서 몇년만에 우울하지않았다 일도그만둔상태라 효과가 2배인거같았다 하지만 불면증은 없어지지않고 죽는게 더 좋다라는 생각자체도 없어지지않으며 삶의불안또한 없어지지않고 인간불신또한 나아지지않는다 우울하지않다고생각하는데도 나아지지않는다 여행도 먹을것도 쇼핑도 흥미가생기지 않고 친구도없고 만들생각도없다 역시 죽는게 제일 나을꺼같다는 생각을 매일한다..
나 진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지 밥도 안 쳐먹고 물도 안 쳐마시고 카페인만 들이부었는데, 몸도 비교적 정말 말짱해 어째서일까. 왜?
무언가 할 의지가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