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의 외적인 것만 보고 부럽다 하네요
내면은 숨막히고 괴로운데...
겉면으로 보면 미국 시민권자, 4년재 대학 졸업, 졸업 후 취업, 눈코 성형 해서 나쁘지 않은 외모, 미국에서 정원있는 2층집 살고, 재혼 부모님 자산 중산층, 잘난 엘리트 언니 등
하지만 과거 부터 지금까지 매일 머릿속으로 저를 죽이고 죽고 싶단 생각일 매일 해요
어디서 부터 말을 해야 하는지...
저는 5살때 부모님이 이혼했어요
엄만 할머니가 부자 남편을 만나야 한다 강요해서 부자라고 속인 남자와 결혼했죠
하지만 거짓이였고 도박에 학대에..
엄마는 참다가 제가 5살때 이혼 했어요
저의 어릴적 첫 기억은 지금은 없어진 금호동 달동네에요
그때 엄만 학원 국어 선생님으로 달 70만원 받았데요
할머니 기와집? 에 얹혀 살어서 3평정도의 작은 방에 언니 저 엄마 살았어요
집이 가난해 따돌림 당했고
금호 초등학교가 2001년때 밥차라고 해야하나
엄마들이 당번을 돌아가면서 각 반에 밥차를 가져가서 애들 배급해줬는데 저희 엄마는 못오시니 제가 애들 밥퍼주기도 했죠
선생님도 많이 때렸고요
4년 후 엄마는 논술 과외도 하시고 점차 제정적으로 안정이 되실쯤
이모가 이혼하셨고 이모 몰래 전 이모부가 이모부 이름으로 대출 받아 산 집이 있는데
혼자 도저히 감당이 안됀다고 해결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에
엄마가 갖고 있는 돈과 대출을 받아서
용인 쌍용아파트로 같이 살게 됐어요
저는 9살때 처음 놀이터를 알았어요
처음 그 집에 갔을때 여긴 천국인가 했죠
그렇게 지내다가 언니가 엄마에게 큰 얘기를 합니다
제가 왼쪽눈이 안보인다고요
저는 기억이 안나는데 7살쯤 언니가 저와 병원 놀이 하다가 시력을 재는데 왼쪽눈이 안보이는 걸 알았데요
근데 저는 언니에게 엄마 지금 넘 힘드니 숨기자 했다네요
제정적으로 안정이 됐다 생각 한 언닌
비밀을 2년 동안 간직하고 제가 9살때 엄마에게 말해버렸죠
즉시 아주대 병원에 갔지만 이미 늦었다고
눈의 병이 퍼지기 전에 적축해야 한다는 말에
엄만 아니라고 서울대 병원에 저를 대리고 가셨고
거기서 코츠병이란 이름을 알게됐죠
다행이 퍼지는 병은 아니라네요
그 병을 알게 된 얼마 후 저의 왼쪽눈이 너무 빨개졌고
눈병인줄 알았는데
서울대 병원에 가니 나쁜 물이 차서 그런거라고 해서
물빼는 수술을 했어요
저의 첫 수술이였죠
퇴원하고
눈에 보호대?를 하고 학교에 가니 그때 터미네이터가 한참 유행이라 다들 저를 보고 놀렸었어요
인조 인간 같다고
저는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왕따였습니다
이모가 미국인과 결혼하셔서
중학교는 용인 동백지구로 이사가서
백현중학교 1년 반 다녔죠
근데 중1 내내 왕따였어요
슬슬 익숙 해졌죠
다행히 중 2때는 학원 친구랑 같은 반이라 한학기 편하게 다니다녔어요
월 70만원 벌던 엄마가 논술 과외로 월 1200만원 벌게 되니
없던 아이였던 저는 자랑할게 그것 밖에 없었고
당연히 다른애들은 절 싫어했죠
그때 생각하면 저도 참 어렸고 멍청했구나 해요
저는 이모가 떠나신 후 항상 혼자였어요
엄만 점심부터 밤까지 학원에 계셨고 밤부터 새벽까진 고등학생 과외를 하셔서
엄마를 보는건 아침 학교가기 전 뿐이였어요
나이 차이 있는 언닌 고등학생이라 저랑 마주칠 일 없었고요
텅빈 집에 혼자 밥먹고 혼자 티비보고 혼자 학원가고 그게 익숙 해졌죠
전 항상 혼자였으니깐요
이모부가 엄마에게 이모부의 동료를 소개 해줬고
그 남자분이 평택 미군부대 안에서 일하셔서 엄마랑 저는 평택으로 와서 같이 살게 됐어요
언닌 성인이라 평택올땐 이미 독립 했고요
저는 모르는 남자가 한집에 있었고
엄만 고등학생 과외를 하다보니 밤마다 나가셨고
엄마가 나가면 이 남자는 잠깐 나갔다 온다 하고 밤늦게 까지 안왔어요
솔직히 전 편했죠
모르는 남자랑 있는게 불편했어요
말도 잘 안통하는 백인이였고요
다행히 단독주택이라 제가 2층방에 있었지만 먹을때 빼곤 안내려가고 항상 방문을 잠궜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엄마가 말해주길 엄마가 일간 동안 동남아 젊은 여자랑 놀러다녔다네요
나중엔 정신 차렸지만 그땐 정말 못쓸 남자였죠)
1년동안 평택에 있는 한광 여중을 다니며 착한 친구를 사귀고 그게 제 맘에 안정을 찾는듯 했어요
근데 엄마가 슬슬 미군부대에 있는 학교를 다니라고
억지로 저를 넣었고
저는 졸지에 영어 하나도 못하는데 미군 자녀들과 학교를 다녔어요
저는 계속 혼자였어요
영어를 못했거든요
한국계 애들도 있었지만 말을 잘 못걸었어요
2008년에 저는 왼쪽눈 백내장 수술을 했어요
아팠죠
새아빠란 인간은 문병 한번 안오더라고요
아 물론 언니도 바빠서..
8인 병실이였는데 엄마는 일가서
수술하는것도 저 혼자 들어갔고
잠에 깼는데
왼쪽눈 수술했는데 오른쪽 보이는 눈도 안보이더라고요
화장실 가고픈데 더듬 거리고 있으니 다른 아주머니들이 도와줬어요
너무 서러워서 수술해서 울면 안돼는데 펑펑 울었어요
난 아무도 없구나 하고요
그렇게 1년반이 지나고 새아빠가 용산 미군부대에 일을 구하셔서 ***동 UN 빌리지로 이사갔어요
(미군에서 돈나와서 좋은 집을 공짜로 살았습니다 물론 전기값은 별개)
거기서도 왕따...
러시아와 한국 친구를 사겼지만 질이 나쁜 친구였고
저도 좀 물들었어요
저는 거의 병풍이였고 개네들이 ***면 이것저것 하는 나가리였습니다
그때 엄마가 혹시 미국가면 제 눈이 나아질까 해서 새아빠를 계속 쪼아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았어요
이 모든걸 3년만에요
시민권은 하와이에 일주일 들려서 받았습니다
(저는 법을 잘 모르는데 미국인이 보기엔 한국은 외국이고 외국에서 일하기 때문에 미국에 안살아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네요)
엄마는 재혼후 일을 슬슬 줄이셨고
일주일에 3일정도
그때부터 엄마처럼 행동하셨어요
하나하나 간섭하고
전부터 화나면 주체를 못하시고 때리셨는데
집에 계시니 제 하는 꼴이 맘에 안드셨나봐요
자주 맞았어요
저는 울면서 반문했어요
왜 이제와서 엄마 행세 하냐고
난 10년동안 혼자였고 혼자 생활했고
방치 된체로 스스로 컸는데
왜 이제와서 모르는 외국 남자가 있고
엄만 집에 있어서
날 괴롭히냐고요
엄만 다 널 위한 선택이라 하시는데
저는 숨막혔습니다
전 10대 이전 부터 혼자였는데..
언니는 항상 바뻤고 엄마도 바빴고
친구도 없었는데
이제 정체성이 생기려는데 왜 하필 지금..이러고요
새아빠한테 고마웠던것 하나는
엄마가 절 때리니 막 화내면서
이거 아동학대다
한번만 더 때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해서 그담부터
2층 제 방에 문잠그고 때리다가
점점 줄더라고요
전엔 습관처럼 볼때 화내고 때렸거든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물어보니
엄마가 저랑 마주칠 일이 별로 없어서
제가 잘못된걸 바로 잡으려다 보니
마주칠때마다 때리고 화낼 수 밖엔 없었데요
근데 제 입장에선 짧은 시간 마주칠때 마다 맞으니 엄마가 싫었었어요
이 새아빠란 인간은 한곳에 못있어 해요
용산 미국 고등학교 다닌지 1년만에 하와이로 이사했어요
물론 놀랍지도 않게 거기서도 왕따였습니다
왼쪽눈이 안자라서 양쪽눈이 심하게 짝짝이라 하와이 가기전에 쌍수 했는데
너무 티나게 했는지 가자마자 뒷말이 많았어요
혼자 꾿꾿이 버티고 졸업했고
새아빠가 텍사스에 일을 구하셔서
(이동하는걸 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ㅡㅡ)
저도 여기서 대학을 다녔어요
대학교에서도 당연히 왕따 입니다
18살 합법인 그때부터 담배를 시작했는데
여자가 담배핀다고 쌍수한거 티난다고 여자애들이 그리 까더라고요
앞담을요
우울증을 계속 앓아왔는데
제가 대학 2학년때 아빠가 하와이에 또 일을 구하셔서 이동하십니다
1년 계약이라 다행히 텍사스 집은 안파시고 가셔서
제가 살았어요
너무 우울해서 죽고 싶다 할쯤
아시안 동아리가 눈에 보였고
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됐어요
저에겐 너무 소중한 친구라 매번 요리하고 운전해줬는데
그 애들은 저를 그저 이용만 했어요..
우울증이 끝까지 차올라
저는 새아빠가 선물해준 권총을 제 머리에 겨누기도 했는데
머리 터진 시체를 치우는 경찰과 구급대원들에게 나쁜 기억을 주기 싫어서
부모님이 먹는 수십가지 약을 입에 쳐넣고
수면 유도제를 한통 다 까서 먹고
피가 빨리 돌게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고
옷을 입은체로 들어가 눈을 감았어요
재수 없게 일어나 보니 물은 식어있었고
살아있더군요
욕조에 아직 안녹은 약물들을 바로 다 토해 냈어요
머리도 아프고 손도 떨리고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또 물을 받고 약을 또 뒤지고
눈을 감았는데
일어나더군요
***
죽는게 이렇게 어렵다는걸 알고 밤새 깨질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년 뒤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졸업을 앞둘쯤
새아빠가 이번엔 대구에 직장을 구하셨어요
1년이래요
졸업을 하고 실헙실에서 일하기 싫어
졸업 직전에 따둔 약사 보조사 자격증으로
미국 약국에 취업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만 해도 할 수 있는 직장이라
페이는 적어요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미래도 없고
물론 사랑도
새아빠랑 엄마랑 10년동안 싸우고 던지고 난리치고 한걸 보니 저는 도저히 연애건 결혼이건 못할것 같아요
마음이 닫혔거든요
얼마나 지독하게 싸우냐면 물건이 휙휙 지나가고 깨지고 둘다 성격이 드세서 엄청 쩌렁쩌렁 싸워요
***도...
그걸 10대때 계속 들었어요
숨막히고 죽을것 같았어요
지금은 서로 잘 지내는것 같은데
전 아무렇지 않지 않아요
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그 싸움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미국에 있는것도 곤욕입니다
10대에 넘어와 저는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모르겠고
한국에선 미국인 취급
미국에선 한국인 취급
영어가 익숙해지지 않아요
10년이나 살았는데... 너무 힘들어요
같은 공간에 있는데 저만 혼자인것 같아요
일할때도 숨막히고요
가족만 생각 하면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혼자인 삶이 너무 익숙해 친구던 동성친구던 만나고 싶지 않고
장애는 너무 괴롭고
점점 왼쪽눈이 줄어들어요
안쓰다 보니 퇴화하는건 당연한데
엄마가 생각하길 미국은 선진국이니 좋은 의사를 만날거라 했는데
무슨... 제 병명을 처음 들어보고 저를 가지고 갖갖이 실험을 하더군요
이 의사 저 의사 다 불러들이고..
저는 실험실의 쥐 같은 느낌이였어요
그래서 의사을 안본지 몇년 됐네요
종종 왼쪽눈의 뒷쪽이 ***듯 아프고 가렵고 괴로운데 약도 없다네요
언젠간 눈 적출을 해야한단 공포감..
무력한 삶
이걸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엄만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고 새아빠랑 결혼하고 딴 여자랑 놀아난것을 참은것도 다 날 위해서라 하시는데
(지금은 늙어서 정신 차리셨어요 전엔 툭하면 이혼해 하고 *** 했는데 이젠 늙어서 싸우다가 엄마가 이혼 하자 하면 순간 음찔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안정적인 삶이 깨질까 무서워 진거겠죠)
저는 그렇지 않아요
엄마가 힘든시간 저도 같이 보냈고
나이는 만 23살이지만 모든 삶의 고통을 다 느껴본 기분이에요
아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고 이번에 계약 연장으로 1년정도 더 있으실거레요
내년까진 집 걱정은 덜었지만
새아빠 딸 아들 즉 저의 새 언니 새오빠가 새아빠를 쫀데요
니 딸도 아닌데 왜 집 내주냐고
근데 이것도 오해인게
집 팔라 했는데 새아빠가 아끼는 스포츠카랑 가구들 맡끼는 비용이 집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비쌌고
집 렌트도 고려 하셨는데 남들 집 *** 만들게 뻔해서
저에게 맡긴거거든요....
저도 독립하려 돈을 모을레도
집 월세가 1000불 넘고 전기값 물값 보험비 700불까지 하면 지금 직장 월급으론 불가능해요
월급은 시급이라 변동이 있지만 세금 11프론가 때면 대략 1200불 정도에요
직장 페이도 ***고 돈은 모아야겠어서
하루 한끼 먹으면서 살아요
일단 죽으면 안돼니
죽으면 가족이 일단 슬퍼 할거잖아요
그리고 자살 시도로 인간이 쉽게 죽지 않는단걸 알았고요
급 생각 난건데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례식 비용이다 뭐다 생각해서
생명보험 들라 했는데 고등학교때 정신과 상담 받은 이력때문에 거절 당했네요..
또한 전 돈이 없는데 나중에 눈 적출 문제가 생겨 수술 해야되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 돈이 없어서 걱정이 되요...
저는 미국인이 된걸 감사하지 않아요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긴 시간 미국에 살아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고
미국인이기 때문에 언젠간 미국으로 돌아와야 하고요
희망을 갖고 살아야 되는데
걍 숨쉬니 사는거 같아요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저의 외적인 부분만 보고 부러워 하는데 저의 삶은 쓸쓸하고 괴롭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는 빈곤층이고요
말주변이 없어 이야기를 잘 못하는데
제 삶은 드라마 같아요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평택 한광여중 친구들도
제 이야기를 들으면 드라마 한편 나오는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저에게 부럽다 하면 이 이야기를 해줘요
삶이 하나하나 고통스러웠다고...
저는 걍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한 가족에 온전한 몸상태 돈이 많지 않더라도 하루 하루 소소한 소확행이 있는...
겉모습만 좋지 속은 썩은 저같은 삶 말고요
왜 저는 평범한 삶이 허락되지 않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시련이 있을지 무서워요
이것도 이겨낸척 담담한척 하지만 하나하나 너무 큰 못으로 박혀서 빼지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미쳐 죽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