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배려는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나친 배려는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난 왜이리 잘 불안해하지 다른 사람들은 깔깔웃으며 별 신경안쓰는데 나만 혼자 불안해하면서 덜덜 떨고있지
난 누가 칭찬해주면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어떤 애들은 칭찬 받으면 "내가 좀 잘하긴 하지!" 하는 애도 있고, "내가 잘하다니, 네가 더 잘하지!" 하는 애도 있는데, 난 둘 다 못하겠다. 왠지 네가 더 잘한다고 말했을 때, 상처 받는 애도 있을 거 같아..
우울한데 그런 내가 한심해 미치겠음.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요?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제가 형편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할까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고, 왜 매번 그렇게 아파하고 후회하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걸까요. 언제쯤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참 외로워요. 슬퍼요. 문득문득 울음이 차올라요. 이상하다싶이 자주 그래요. 저도 저를 이해하지 못해요.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원래 이렇게 어렵던가요.
갑자기 과거의 일이 떠오르며 내가 못나보일때. 또 후회하며 반성한다.
자신의 기분을 자신이 조절하기 힘들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너무 심해서 힘들어요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나도 인기많았음 좋겠다
혼자 격분해서 플라스틱 옷걸이로 제 이마를 빡빡 때렸는데 혹나고 멍이났어요.. 언제쯤 없어질까요? ㅠ
제가 성격이 답답해요..말도 잘 못하고ㅜㅠ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만난 애들은 거의 다 제가 ***인줄 알고요ㅜㅠ 뭔가 변화를 주고싶은데.. 노력해도 이 성격에서 계속 벗어나지지가 않네요.. 성격을 고칠수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아마도 난 인생 2회차가 아닐까
난 좀 입험한편이라 악의 없이 평소 대화할때도 표현 거친데 안 친한사람들이 내평소말투들으면 선입견가질거같아서 욕안씀 그사람들이 친한친구랑 떠드는 내 말투 어쩌다본 거같은데 이중적이라고생각하겠지 스트레스받는다
일이 풀리지않고 연속적인 좌절, 그리고 급급함 연속에 지치더라구요. 해놓은것은 없고..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더니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다시금했는데요.. 그러나 그것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에 불구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 시켜주는 것이였을 뿐이였던거 같아요. 내가 그러한 존재밖에 안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기 힘들었는데, 그말을들은 한 친구가 위로하며 아니라고 하는데 왜 저라는 사람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만 할까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제 힘듦을 이야기하는게 힘들어요.
하고싶은 말, 하고싶은 감정표현을 못해서 너무답답해요 그렇다고 막상 표현하면 버벅거리고 제모습이 어색하고 이렇게 해봤자 무슨 의미가있나싶고, 차라리 입을다물껄 후회마저들어요
이모습도 나고 저모습도 나야 왜자꾸 변했다고 하니?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는 나는그냥 나야
그 때의 나 자신은 정말 힘들었구나.....
나는 완벽주의자다. 모든 면에서 다 잘 하는 팔방미인이라는 사람이 되고싶고 남보다 특출 나야된다는 일종의 강박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완벽주의자로서 살아간다는건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나 자신, 나보다 잘하는 남. 나는 상대적 박탈감과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참한 마음이 드는 한편 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는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다 나는 왜 이렇게 고달프게 살까. 왜 나는 나를 놓아주지 못할까.
전 현재 19살 고2 입니다 17살 2학기부터 학교다니는게 너무 싫었어요 제가 하지않은 일들을 제가 했다고 소문이 나고, 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부풀려지더라고요.. 그게 너무 버티기 힘들었어요. 분명 제 옆에는 친규들이 있었지만 저 스스로 "쟤네들도 분명 속으로 내 소문을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먼저 거리를 두게되었어요. 애들한테 다이어트를 한다는 핑계로 점심을 같이 안먹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는 저를 신경도 안쓰고 친규들끼리만 다니더라고요..기다렸다는듯이..ㅎㅎ. 그때부터 저는 모든 것을 혼자했어요, 화장실가는것도 체육시간에 이동하는것도 공부하는것도 도서관가는것도요.. 제 꿈은 경찰이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경찰행정학과가는것이 전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순경시험이라는게 있더라고요. 학력을 안보고 만 18세만 되면 응시할 수있는 좋은 시험이였어요. 부모님께 저는 순경시험을 보겠다고 선택과목도 경찰학개론. 형법.형소법. 영어 한국사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억지를 부린거죠. 물론 부모님은 두분다 반대하셨어요. 그렇게되면 저는 중졸의학력을 가지게되니깐요. 설득을 해도 안되자 저는 모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일자로 찍고 자고. 일부로 답을 피해 마킹해 0점을 받기도 했어요. 그래서 겨우 얻어낸것이 휴학이였어요. 1년 휴학을하며 제가 하고싶은 것들을 해보라고, 지금 1분1초라도 학교에거 벗어나고싶은 마음에 저는 하겠다고했어요. 그러고 휴학을 해 1년을 공부하다가 학교로 돌아가기 한달전 전학을 결심하고 지금 서울로 전학을해 복학을 했어요.. 근데 하루하루 내가 2000년생인걸 들키지는 않을까 ... 애들이 알게되묜 어쩌지 하는생각에 불안해요.. 여기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있는데 들켜서 어색해 질까봐 걱정이되어요.. 페북을 보다가 타고타고가서 내가 19살이라는것을 알게되지는 않을까,, 혼자가 될 수도 있다고하더라도 털어놓을까..? 하고 하루에 수십번은 생각하는것 같아요 나이를 속이는게 은근 계속계속 거짓말을 하게되더라고요.. 어떡하는게 좋을까요. 과연 제가 한 거짓말을 털어놓고도 지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게 가능할까요? 아니면 꾹 참고 졸업까지 갈까요?
학교갔다 집에들렸다가 학원갔다 잠을자고 또다시 일어나 학교갔다 집에들렸다가 학원가고 솔직히 선생님.부모님 어른들은 다 내 꿈을위해서다 그러시는데 난 꿈조차 없고 희망조차없는데 왜 도대체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까지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닐까 , 이렇게해봤자 나에게는 스트레스 . 우울증 등 에 시달이는것뿐인데 매가 하루하루 왜살고있는지를 모르겠다 어차피 뀸이있어서 이뤄봤자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나는 꿈을 이뤄도 행복하지않을것같다 대학이고 취업이고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있는지 나는 언젠가부터인가 살가치가없고 왜 사는지 , 또 위와 같은생각만 하며 의미럾는삶을 지내고있다
나는 청각장애 4급이다. 난 태어났을땐 다 멀쩡했다. 4살때 갑자기 고열이 38~9도 까지 며칠 내내 올라서 해열제 먹여도 열이 안내려갔다. 그 뒤로 말을 안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걱정되어서 병원 가니 청각장애 판정 받음 그냥 운명인거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벌 받은걸까. 지금 양쪽 다 보청기를 끼고 있고 외이도염을 항상 앓고 있다. 외이도염은 귀가 붓는건데 주로 이어폰을 많이 끼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질병이다. 그래서 나는 보청기를 항상 하루종일 끼는데다 피부가 약한 편이어서 귓 속이 늘 퉁퉁 부어있다. 그리고 통증도 너무 아프다. 그냥 365일 안아픈 날이 없다. 모든 청각장애인들이 이런건 아닌데 내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한다. 아무튼 난 보청기를 빼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볼수가 있다. 그냥 일반인과 대화 자체가 되질 못한다. 그래서 보청기를 꼭 껴야만 한다. 사실 보청기 껴도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다. 사람들은 발음도 안좋을뿐더러 말 소리도 너무 작다. 4급이면 충분히 잘 들린다고 착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지들이 겪어***도 못했으면서 보청기 껴서 잘들린다고 판단하는 잣대가 토나온다. 대한민국은 청각장애인 등급이 2급부터 6급까지만 있다. 1급이 없다. 1급이 없는게 말도 안된다. 귀가 아예 안들리는 사람을 1급이 아니라 2급으로 정정하다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른 장애랑 차별하는거야 뭐야 *** 나 정도면 4급이 아니라 2급 3급 정도다. 이거때문에 다른 장애에 비해서 혜택 받는게 적다. 너무 부당하다. 그리고 혜택 받는거가지고 *** 하는 사람도 많다. 귀 안들리는것도 억울해죽겠는데 혜택 좀 받으면 어디 덧 나나 그렇게 아니꼬우면 니들도 귀 찔러서 장애 등급 받고 혜택 받아라 여기서 부터 엄청 길어질건데 거의 내 인생 이야기를 다 풀어냈다고 보면 된다. 나는 유치원때부터 친구들과 많은 오해가 있었고 오해가 너무 깊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나는 고작 8살짜리이니까 인간관계가 처음이지. 그 어린 나이에 친구들한테 내가 귀가 잘안들려서 그러는데 크게 얘기 해줘~라는 말을 알아서 잘 할 수가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라고 나한테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내가 그렇게 생각해낼만큼 똑똑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도 내가 귀가 잘안들리니까 크게 말해줘라, 청각장애인이란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내가 청각장애인인걸 모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못알아들으니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게 두려워서 구석에 가서 거의 책만 읽었다. 아이들이 다가와도 내가 알아듣질 못해서 아이들은 내가 귀가 안들리는줄 모르고 쟤 쌩깐다 ***없다 뭐니 뒷담화를 늘 했었다. 귀가 안들려서 못들었지만 귀가 안들리는 만큼 눈이 더 발달한 탓일까 나를 욕하는게 듣지 않아도 나는 다 느껴졌었다. 상황, 아이들의 눈빛, 입모양만 봐도 충분히 알아채는 나였으니까. 한번은 5학년때 따돌림을 제대로 당했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폭력적이었다. 확실히 아이들이 클수록 따돌림이 더 잔인하고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때 나는 진심으로 걷잡을수없이 나의 자존감과 나의 멘탈이 바닥을 쳤다. 나의 굳건했던 멘탈이 와장창 깨져버린것이다. 너무 폭력적이었던 아이들의 행동과 눈빛들이 아직도 나는 생생히 기억나고 내 가슴을 후벼판다. 그때의 1학기는 너무나 힘들었었다. 2학기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날 보면서 누구는 사실 청각장애인이야 귀가 잘 안들려서 보청기를 다 낀다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태세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사과 한마디도 없이 언제 따돌렸냐는듯 친한척 하고 가식을 떨었다. 고작 12살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혐오감을 경멸히 느꼈었다. 그냥 그 애들이 끔찍하고 더러운 존재로밖에 안보였었다. 너무나 큰 두려움과 충격에 판단이 되지 않아서 멍청하게 가족들에게 말하지도 못했다. 그저 학교를 가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했다. 배가 아프다라던지 머리가 아프다던지 참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부모님은 상황을 모르니 이런 내가 그저 사고뭉치로 보여 나를 때리면서 발로 밟아가면서 학교를 보냈다. 물론 내가 쌩***을 해서 안간날도 많았다. 혼신을 다해 연기를 하기도 했었고 순간적으로 온몸이 각성 돼서 힘쎈 아빠를 밀쳐내고 도망다니기도 했었다. 매일 매일 순간이 아찔하고 다이나믹했다. 너무 지옥 같고 살기 싫어져서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었다. 비닐끈으로 목을 ***봤다. 그순간 등골이 싸해지면서 그 차가운것이 나를 감싸돌았다. 너무 무서워서 끈을 바로 풀었었다. 자살하기는 너무 너무 무섭고 죽기는 싫은데 죽고는 싶어서 매일 밤마다 잠들면 바로 심장마비로 죽게 해주세요. 라고 매일 매일 빌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죽지 못했다. 쫓고 쫓기는 지옥같은 생활을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반복해왔다. 결국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너무 두려워서 이 변명 저 변명 얘기하면서 중1때 자퇴를 했다. 그뒤로 난 3년동안 히키코모리 삶을 살았다. 엄청 부정적이고 중2병에다가 내 모습이 더럽고 끔찍해보여서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유일한 소통은 인터넷이었다. 네이* 판 을 주로 봤었는데 거의 눈팅만 하고 가끔 멀쩡하게 사회 생활 잘하는 사람인척 글을 쓰기도 했었다. 집 밖에 나가는 날은 한달에 한번 꼴로 나갔었다. 세달에 한번 나갔던적도 있었다. 안나가고 햇빛을 *** 않아서 그런지 바깥에 나간날은 햇살 아래에 있으면 너무나 어지럽고 띵했었다. 매일 악몽을 꾸고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었고 헛것이 정말 많이 보였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정말 힘들었었다. 그래서인가 난 여자인데 스트레스때문에 거짓말 안치고 머리카락 50퍼가 빠졌었다. 참 힘들었다. 그리고 난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엄마는 또 내가 친구를 만나면 좋겠어서 16살인 나를 집근처 고등학교에 보냈다. 내 정신은 아직 중1에 머물러있고 모든 상황을 견딜수가 없었던 것 이다.. 공황이 오면서 나는 일시적으로 ***가 되어버렸고 진짜 ***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심장이 ***듯이 누가 비수로 팍팍팍 꽂아내는것 처럼 아파왔고 아파서 손으로 심장을 퍽퍽 두드렸다. 얼굴은 늘 새하얗게 질렸었고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애들도 많았다. 근데 집에 오면 마법처럼 내가 멀쩡해지는것이다. 사실 집도 편안하지 않다. 두들겨 맞은 기억밖에 없다. 그렇지만 학교라는 장소보단 나은것 같다. 그때는 학교를 가느니 차라리 집에서 부모님한테 두들겨 맞는걸 선택할 것 이었다. 결국엔 나의 공황장애를 이길수가 없어서 자퇴를 했다. 17살이 되고 엄마는 특수학교를 알아보았다. 장애인 학교다. 엄마는 단지 내가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어서 아껴주었던 마음일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엄마가 끔찍했다. 엄마가 혐오스러웠다. 학교에 *** 여자밖으로 밖에 안보였다. 엄마를 그렇게 보면 안됐지만 나도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학교 생활 1년은 엄청 불행했다. 지적장애인한테 *** 당하고 시달리고 애들이랑은 말도 안통하고 선생님들도 이상하고 3시간 동안 노동을 하고 지옥 같았다.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았다. 매일 아침 학교 가기전에 화장실 창문을 보면서 저기로 뛰어내려버릴까 생각을 했었다.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계속 빠졌었다. 시간이 흘러 작년 2학년이 되면서 나는 급격히 귀가 아파졌고 스트레스 때문에 자퇴를 했다. 그래서 지금 올해 검정고시 준비중이고 내 쪼대로 살고있다. 부모님도 날 포기하신것 같다. 아직까지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있지만 나도 사람을 안만나고 살수는 없으니까 사람을 좀 만나려고 하면서 살고있다. 만나기 싫지만 난 곧 사회 생활을 해야하니까 그냥 만나고 있다. 깨달은게 참 많다. 비록 학교를 다니면서 갖춰야할 기본 지식을 갖추지도 못했고 얻은것도 없고 내가 잘하는것도 없지만 배운점은 꽤 많은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했고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면 너무 억울하고 바로 눈물이 펑펑 나지만 다 앞으로의 밑거름이 되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그렇다. 지금도 그런걸. 앞으로도 더 나아질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건강하길 바랄뿐이다. 마음도 몸도 건강할수있게 나는 비록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어둡고 좋지 못했던 시기를 보냈지만 그래도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것 같다. 물론 그 시간들이 소중한게 되는건 아니지만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것이다. 지금 나는 귀도 매일 아프고 안들리고 무기력증에다 대충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겪어왔던 일을 바탕으로 내가 할 수있는 일들이 있을것이고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맘대로 살것이다. ***마이웨이할거다. ㅇㅇ 정말 난 대단한일 한 건 없어도 나에게 대단한 사람이고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잘 버텨왔다고 열심히 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