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간을 내서 처음으로 어버이날 기념 장문의 편지를 썼다. 오랫동안 마음 속에 묵혀두었던 얘기도 쓰며 많이도 울었다.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며 그래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다 쓴 편지를 고이 접어 예쁜 봉투에 넣고서는 책 속에 숨겨두었다. 이 편지를 보여드리면 나에게 조금 더 사랑을 주시지 않을까? 지긋지긋했던 이 우울도 나아지지 않을까? 현실은 냉정하다. 오늘따라 왠지 공부가 잘 되더라고. 배탈이 나서 점심, 저녁 모두 굶었지만 정신력 하나는 정상을 찍었다. 집에 가서 죽을 먹어야겠단 생각에 학원에서 전화를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 아프다니까? 왜 걱정해주지 않는 거야? 엄마는 한숨을 쉬며 위로 한 마디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시 우울이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한두 번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그랬듯 먹구름 같은 우울을 마음 깊은 곳에 집어 넣어버렸다. 그렇게 모처럼 보람차게 학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탁해놨던 죽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래도 날 생각해줬구나'란 생각에 행복해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릇을 싹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아빠가 여기 앉아보라 말했다. 아빠의 손에 들린 건 내 성적표였다. 그래, 솔직히 할 말 없다. 공부를 안 한 건 사실이지 않나. 공부하지 않는 내 모습은 그렇게 관찰을 잘하면서, 우울함에 ***어있는 나는 왜 감쪽같이 모를까. 곪아가고 있는 내 마음은 숫자 투성이인 성적표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똑같았다. 그렇게 공부할 거면 학원 그만 두라는 소리. 성적표를 내팽겨치고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셨다. 억울했다. 애초에 나를 개 패듯 패지만 않았어도 우울에 빠져 공부를 놓진 않았을 거다. 물을 한 바가지 들이붓지만 않았어도 우울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 난 학원 그만 둬도 돼. 상관 없어. 근데 아빠 때문에 이제는 인생을 그만두고 싶어졌어. 난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봐. 아무도 내 우울을 몰라주네. 매일마다, 매 순간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근데 내일을 살*** 자신이 없다. 이 세상에는 정말 나 혼자다. 편지는 그냥 갈갈이 찢어버려야겠다. 기대한 내가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