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심히 불행했고 지금도 여전히 불행하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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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내 인생은 심히 불행했고 지금도 여전히 불행하다. 중학생 때 처음,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다 집에서 컴퓨터하다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을 때, 엄마가 안방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응 자기야 냉장고에 뭐뭐 챙겨놨어 먹어" 그렇게 엄마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걸 처음 알게 되고 소리죽여 울었다. 내 나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살에,, 아빠한테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오직 가족을 위해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는 아빠가 불쌍했다. 그런 아빠가 알게 되면 우리 집안이, 가정이 깨지고 풍비박살이 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갈라섰고 아빠만 더 불쌍해진 지금에서는 빨리 말하지않은걸 후회했다 어렸던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은, 매일 매일이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오빠랑은 거의 집에서 볼 일이 없었고 아빠도 회사 일 때문에 귀가시간은 밤 11시나 새벽 12시여서 주말을 뺀 5일 저녁은 항상 집에 혼자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 도어락을 열면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유일하게 나를 반기는건 반려견뿐이었지만 그래도 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에 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건 집 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하는것이다 "엄마 어디야? 언제와?" "식탁에 돈놔뒀으니까 저녁 사먹고 먼저 자" 전화를 하면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술에 취해 정신이 없을때가 많았다 혼자서는 밥도 먹기 싫었고 큰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는게 나는 정말 무섭고 싫어서 졸리면 거실소파에서 자다가 아빠나, 엄마가 와서 깨우면 그때서야 안심하고 방에 들어가 잤다. 내 이런 고충은 아무에게도 말하지못했다 어린 내 말따위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저.. 반겨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잘 갔다왔냐는 한마디가 그리웠다 가족이 있지만 없는 것과 같았다 엄마는 술집 노름, 나이트, 바람을 심하게 많이 즐기는 사람이었다 퇴근한 아빠가 술에 취한 엄마를 매일 찾으러 가야했고, 술취해서 길에 뻗어있다거나, 돈을 안내서 경찰서에 있다는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았다 아무도 없으면 잠을 잘 못잤던 나는 새벽까지 깨어있다가 문소리가 들리면 안심하고 자고는 했는데 어느 날은 아빠가 퇴근하고 1시간도 안되서 전화를 받고 다시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그 날도 엄마가 술을 진탕 먹고 계산할 돈이 없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한 걸로 기억하는데 엄마를 끌고 들어와서 참다 못한 아빠가 폭발하고 말았다. 안방 티비를 다 부수어버리고 엄마도 화가 나서 거실 식탁을 다 망가트렸다. 그 소리에 나는 울며 방에서 나왔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서럽게 우는 나를 미안하다며 타이르고 달랬다. 아빠는 이혼하고 나서도 엄마의 빚을 갚아야 했다 벌어오는 돈의 3분의 2는 다 엄마가 사고치고 빚진 돈을 갚는 것에 써야 했다. 이혼한지 7년이지만 최근에서야 그 돈을 다 갚았다고 한다 내가 스무살이 되고 처음 방학을 했을 때 엄마 아빠는 오빠와 나를 불렀다 오랜만에 가족 네 식구가 전부 모여 식탁에 앉았지만 그 날이 우리 네 식구가 같이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엄마는 우리 앞에서 아빠와의 이혼을 요구했다 다른 사람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아빠는 애써 담담하게 이러저러해서 그렇게 하게 됐고 우린 이제 아빠랑 같이 산다고 했다. 아마 그 날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운 날일 것이다. 세상은 결국 끝나지않았지만 정말 내 세상이 끝나는 기분이었다. 오빠는 화가 나서 엄마에게 소리치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울고만 있었다. 오빤 다시 학교를 다니고, 난 충격받아 휴학을 하고 아빠와 같이 지냈다 아빠는 그래도 우리의 엄마라는 이유로 돈을 요구할 때마다 돈을 주고, 내가 휴학하는 동안 엄마의 가게에서 돈을 덜 받고 아르바이트를 시켰다 (그 가게는 본사가 있는 점주로 들어간 것인데, 송금 해야할 돈까지 다 써버려서 지금은 소송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엄마의 그 사람을 보았다. 뻔뻔하게 양심도 없이 내가 있는데 가게에 와서 엄마와 애정행각을 했다. 결국 6개월을 넘지 못하고 그만두면서 엄마를 볼 일이 없어졌다 오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엄마와 연락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 해서 오빠의 사진을 달라고 하고, 아빠에게 전화해서 최근까지도 돈을 요구 했다. 내 불행의 시작은 엄마였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잘 사는 집이었던 우리는 엄마의 빚 때문에 빨간 딱지도 붙었고, 압류도 되어봤고 결국 거지꼴이 됐다. 지금은 우리 소유의 집도 없고 오빠도, 나도, 아빠도 모두 흩어져 살고 있다 가장 먼저 취직한 오빠는 서울에, 난 대학을 나온 그 지역에 터를 잡았고 아빤 친척이 새로 이사가면서 남겨놓은 좁은 집에 겨우 살고 있다 엄마를 가장 사랑했던 나는 여전히 엄마를 미워하지못한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아빠와 오빠가 더 소중하다. 결혼할 사람에게도 엄마는 죽었다고 하고, 없는 존재로 여기라는 아빠의 말을 잔인하다고 생각하지않는다. 가끔 만나서 술을 한잔 하거나 하면 아빠는 아직도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미안하다고, 다 아빠 탓이라고. 너희들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이젠 미안해하지않아도 돼. 아빠. 셋이서 같이 예전처럼 한 집에서 사는게 나의 오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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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j12
· 7년 전
너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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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wka
· 7년 전
토닥토닥 힘들었죠~~ 그래도 아빠 오빠‥라는 가족이 있어요‥ 참힘든삶을 살았던 아버님에게는 당신이라는존재만으로 힘일꺼에요 고생하셨어요 그상처들 다지워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처들이 굳은살로 남겨져 님이 그상처에 무뎌지길 바라면서 님이살아가면서 응원하는 사람이있다는걸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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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acilia
· 7년 전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자식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많으셨을까... 생각이 드네요. 여태까지 마음고생 많았죠.. 정말 고생 많았어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죠.. 비교하게 되고 억울하고.. 저는 글쓴이 분이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미워하지않고 이해하시는 과정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네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가족끼리 자주 만나시고 서로 더 기대고 표현하고 안아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에게.. 오빠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저는 오랜시간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우울증이 오랜기간 지속된 사람은 스스로 행복한 길을 찾는 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자신 속이 우선 지옥이니까... 글쓴이분께서도 힘든 상황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 것은 자기 자신만이 할수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타인을 위로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행복해 지는게 먼저에요. 항상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글쓴이분이 앞으로 행복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 행복한 일만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