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챗바퀴처럼 돌*** 때 나는 걷는 것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중학교]
알림
black-line
커피콩_레벨_아이콘16nlight
·7년 전
모든 일이 챗바퀴처럼 돌*** 때 나는 걷는 것 밖에 배우지 못해서, 뱅글 뱅글 돌아가는 그 안에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쓰러진 채 나도 같이 굴러서. 이 굴레가 멈췄을 때마저 난 제자리일 뿐이었고 뛰는 법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쓰러지고 제자리임을 여러번 겪고야 어느덧 뛰는 법을 알기 시작했는데, 그거 알아? 뛰어도 제자리인게 챗바퀴인 걸. 그저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알았을 뿐인 거다. 벗어나는 방법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겨우 깨달았을 뿐이었던 거야. 과거 트라우마, 잊었다 말 한다고 사라질 기억이었으면 트라우마라는 말조차 생겨나지 않았겠지. 이겨내는게 아니라 버텨낼 뿐이라는 거, 그저 모른척하고 살아가는게 전부이다. 상처는 아물지만 남은 흉터는 더 아물지 않아. 착각이야. 이겨냈다는 오만함이야 말로 더 큰 상처를 발현하게 하는 원인이라 생각한다. 나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 인간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살아온지 스무해가 넘었다. 외계인? 조금만 다른 듯 하면 이방인 취급하는게 인간의 본능인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이야기 해도 옳고 그름 그 두가지 외엔 알지 못하는 무리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믿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자아정체성 확립되고 활달히 성장할 시기에 나는 사람 무리와 분리된 채 살았으니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가벼이 묻는다. 달이 왜 달이고, 태양이 왜 태양인지. 달이 뜨면 왜 밤이고 태양이 뜨면 왜 아침인지. 지고 뜨는 것의 정의와 아침 점심 저녁의 기준은? 이 질문을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또한 대답하는 이는 얼마나 있었을까. 잘난 지식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머뭇거리거나 장난으로 넘겨버리기 일수였다. 나는 이 질문이 무엇보다 진지했다. 절대 시시한 농담 따먹기나 장난섞인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독특한 것의 기준은 무엇이고 틀림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 정의를 내린 것이 어떤 자이며 그에 명확히 응한 이는 몇이나 될까. 인정했다. 나는 평균적인 것과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르며, 대게 이해받지 못할 사고방식과 표현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그들에게 치유하지 못 할만큼 받은 상처로 사람에게 적대심을 가진 채 성장했고, 그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려 했으며,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벗어나고싶은 마음으로 생존했기에 다를 수 밖에 없음을. 호소한 들 들어주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나 역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았고, 받아들여짐을 포기한 채 오로지 나만이 나를 인정한 채 살아왔다. 사실상 존재 가치가 없음을 한 평생 느끼며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큼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외모와 보기 흔하지 않은 몸매를 가졌다. 넓은 아량과 겸손함. 꽤 많은 재능, 괜찮은 지식 수준을 갖췄다. 높이 평가되진 않더라도 사회적, 물리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내 몸은 성한 구석 하나 없었다. 혼자 버텨내고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강한 생존 본능이 스스로를 절벽으로 내몰았기에. 건강 문제로 여러번의 수술을 치뤄야 했고, 또 수술을 앞두고 있다. 병원이 집처럼 편안하며 적응될 것 같지 않았던 주사마저도 이젠 그럭저럭 맞을만 하다고 느낀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고 피곤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저 익숙해서 괜찮다. 한번은 중학교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넌 무슨 전쟁나서 지하 벙커에서 겨우 생존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같아." 다름 아닌 점심 시간 함께 밥을 먹고 있을 때 들은 말이다. 그녀가 한 말을 난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녀와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 날 나는 새벽이 지도록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겨야 했다. 의미가 없으면 생각하기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내가 로봇이나 인형같이 굴어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은 가지고 놀다 질리면 버려졌지만 몇 몇의 자칭 나를 아껴주는 이들에 의해 몰랐던 감정이나 표현을 배우기도 했으며,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학생 시절 2년 정도를 집안에서만 먹지도 싸지도 않고 자고 몽상을 반복하며 시체마냥 지냈었는데, 그 때도 내가 이불을 벗어나 걷는 의미를, 숨 쉬는데 의미를 부여해 준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움직였을 뿐이었다. 원동력이 되는 의미가 없으면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쉽게 주저앉고 만다. 지금도 별 다를 건 없다. 먹는 것에도 자는 것에도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배고프지 않으면 며칠도 굶었고, 피곤하지 않으면 뜬 눈으로 몇 날을 지새운다. 지난 상처를 버텨내고 설령 정말 이겨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며 기억이란 것에 씁쓸한 감탄을 해본다. 자기 방어적으로 살아온 삶의 방식과 이미 늦어버린 '평균적'인 표현방식을 지금 터득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앞으로를 살아가려면. 살아야 된다면 많은 이들이 내게 노력을 강요했기에, 일단은 그들을 따르기로 했다. 멍청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배워보기로 했다. 사랑받고싶은 건 누구나 똑같으니까.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따옴표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