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와 같이 바쁘던 어느 날. 평소처럼 끊이지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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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언제나와 같이 바쁘던 어느 날. 평소처럼 끊이지 않는 재판을 준비하던 어느 재판관은 여상한 얼굴로 재판정에 들어섰어요. 죄수의 죄목은 연쇄살인 및 친족 살해, 쉽게 말해 살인이었죠. 죄수는 재판에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인재였어요. 다정한 부모님, 살가운 동생, 뼈대있는 집안, 출중한 능력에 눈이 흐뭇해지는 외모를 가진 죄수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보였어요. "피고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재판이 시작되고 재판관은 으레 그러하듯 죄수에게 물었어요. 사실 이번 재판은 재판관에게 있어 유명하되 명확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내세울만한 재판이었기에, 재판관은 한껏 멋드러진 목소리로 물었어요. 내일이면 이 재판이 반대편에 앉아 집중하는 기자들에 의해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될테니까요. "인정합니다." 마치 타인의 사건을 대하는 듯 관심없는 얼굴로 툭, 죄수가 답했어요. 너무나도 순순한 대답에, 배심원과 검사와 시민들은 분노했어요. 재판관과 기자들은 아쉬웠답니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수록 큰 화제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른 시간이죠. 재판이 끝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남았거든요. "피고가 처음 살해한 사람이 누구죠?" 검사는 분노를 담아 날카롭게 물었어요. 변호사 고용을 거절할 정도로 숨길 생각이 없었던 죄수는 고민없이 답했어요. "56세 ***, 마을 호프집을 자주 이용하던 알코올 중독자죠." "왜 살해했죠?" "술에 찌들어 사는 주제에 제게 사사건건 주접을 떨어대는 것이 거슬려서 였습니다." 재판정이 술렁였고, 기자들은 재빨리 수첩을 채워나갔죠. 검사는 눈살을 찌푸렸죠. 그러나 그 이야기에 욱하거나 흥분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오지랖 넓은 알코올 중독자는 모두에게 취급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 다음엔 32세 ***, 타지에서 휴양차 온 관광객을 살해했죠.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피고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을, 살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번에는 재판정이 정적에 휩싸였어요. 죄수가 빤히 검사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말을 하기 전에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했거든요. 어쩐지 가슴이 턱 막혀오는 느낌에, 사람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죄수가 답하기만을 기다렸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죄수는 답했어요. "...모르겠어서. 살인을 하고나서 남은 것이, 귀찮은 걸 치운 뒤의 상쾌함 뿐인데, 원래 그런 건지 싫은 이를 치워서인지 모르겠어서요." 죄수의 답변에,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어요. 아까의 알코올 중독자와는 달리 관광객은 생전에 가족과 사이가 좋았거든요. 관광객의 아***가 소리쳤어요. "고작, 고작 그딴 것 때문에 우리 애를 죽였어!!! 으아아아악!! 죽어, 죽어, 죽어!!! 너같은 괴물은 죽어야돼, 끔찍하게!" 땅땅땅. 재판관에겐 재판정에서의 소란을 저지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관광객의 아***는 결국 다시 얌전해져야 했어요. 쓰레기 살인마의 최후를 반드시 지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는 주먹을 말아쥐고 버텨요. 자식을 잃은 고통으로 밤낮없이 울다가 쓰러진 아내에게, 살인마가 죗값을 치르게 되었노라 알려줘야 했거든요. "관광객부터 7살 아이까지는 전부 비슷한 맥락이니 넘어가죠, 전부 답하려면 오래걸립니다."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죄수가 말했어요. 그 말에 검사는 분노했어요. 그리고 그 분노를 숨기지 않았죠. "24세 대학생, 61세 자영업자, 17세 고등학생, 43세 주부와 함께있던 7살 어린아이!! 피고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습니까? 인간이라면 최소한 귀찮은 티는 내지 말아야지!!!" 검사의 터질 듯한 분노를 보며 유족들은 눈물을 흘렸고 시민들은 공감했어요. 재판관은 검사에게 진정하라 주의를 주었고 기자들은 바쁘게 펜을 굴렸죠. 그러나 여전히 죄수는 평온했어요. 그저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듯, 어쩌면 그보다도 더 무심한 눈을 하고서 말이에요. "어째서죠? 제가 귀찮은 티를 내지 않는다고 무죄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죄수의 말에 유족들은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어요. 네가 사람이냐, 악마다, 찢어 죽이겠다, 다시 살려내라...분노에 찬 외침들이 재판정을 가득 채웠죠. 검사는 분노를 넘어 황당하다는 얼굴로 죄수를 쳐다봤고, 재판관은 유족들을 진정***려 애썼어요. 그리고 기자들은 그 광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죠. 후안무치한 살인마, 특종의 타이틀로 딱 좋았거든요. "그럼, 평소 절친한 친구 26세 ***씨는 왜 살해하신 겁니까?" 겨우 재판정이 안정되고 검사는 죄수에게 물었어요. 죄수의 친구는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지기였고 가족만큼이나 사이가 좋았는데, 어째서 죽인 것인지를 두고 말이 많았거든요. 친구는 죄수를 귀찮게 한 적도, 힘들게 한 적도 없었어요. 사실 친구가 살해된 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죄수를 의심하기는 커녕 걱정하고 안쓰러워 했을 정도였어요. 친구와 마지막에 만난 사람이 죄수였음에도, 경찰조차 죄수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을만큼 사이가 좋았거든요. "물어봤어요.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다면 그건 뭘까? 그랬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의미없는 사람을 죽였나***.'" "그게, 살해 동기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의미있는 사람이 죽으면 다른 느낌일까 싶어서 죽였습니다." 또 한 번 재판정은 정적에 휩싸였어요.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함 사이로 작게, 저런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죠. 죄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해할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고작 그딴 이유로 둘도 없는 친구를 죽일 수가 있다는 걸까요?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에요.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죄수와 같은 부류일테니까요. "그래서...살해 뒤에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까?" 검사의 질문에 사람들은 다들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를 죽이고나서 본성을 완전히 깨달은 살인마가 가족들을 모두 살해한 것이겠죠. 살인의 쾌감을 깨닫고 각성한 게 분명해요. "전과 같았습니다." 뎅-, 사람들이 머리로 타종한 듯 멍해졌어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거든요. 살인의 쾌감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니, 그럼 대체 왜 가족들을 죽인 걸까요? "그렇다면 가족들은 대체 왜 살해한 겁니까? 의미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살인이 모두 같은 느낌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굳이 가족들을 살해한 이유가 뭐죠?" 검사가 흥분해서 긴 말들을 빠르게 쏟아냈어요. 재판정의 모든 사람들이 죄수의 입에 집중했죠. 살인이 즐거운 것도, 살인을 해야만 하는 이유도, 정신과적 문제도 없는 죄수가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궁금했거든요. 게다가 이전의 사건들과는 다르게 가족들을 살해한 뒤에 어떠한 뒤처리도 하지 않고 슬픈 척도 하지 않았는데다가 직접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으니, 그간 흔적도 없이 다니던 살인마가 왜 그랬을까 다들 궁금하기는 매한가지였어요.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저 스스로.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괴물이 되기 싫었고, 죄책감과 후회를 겪는 평범한 사람이기를 바랐어요. 난 내가...남들과 다른 것이 싫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살인을 하지 말았어야죠." "의도치 않았지만 해버렸고, 남들과 다른 날 깨닫고나니 끔찍했습니다.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기대했죠, 이 사람을 죽이면 나도 죄책감을 느낄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발상부터가 이미, 남들과는 다른 것 아닙니까?" 조용한 법정 안에 검사와 죄수의 문답소리만이 가득 찼어요.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고 또 집중했죠. 기자들은 어느덧 반이 넘게 차오르는 수첩을 보며 흐뭇해졌어요. 이번 신문은 이 괴랄한 살인사건과 살인마, 그리고 이번 재판만으로도 가득 차고도 남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뒷처리를 포기했습니다.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죠. 가족들을 처참하게 살해했는데도 너무나 멀쩡한 저를 보고 제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르실겁니다." 그 뒤로 재판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어갔어요. 죄수는 질문에 고민도 막힘도 없이 답했고 검사는 기소한 모든 죄목을 재판관에게 인정받았죠.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관은 절차에 따라 죄수에게 최종 변론의 시간을 주었어요. "처음 죽인 생물은 동물들이었죠. 사냥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것 정도는 여상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고도 감상이 없는 것은, 어쩐지 이상했죠. 아예 모르는 사람도 죽여보고 모든 이들의 동정을 받는 이도 죽여봤습니다. 혹시나 싶어 아이도 죽였어요. 친구를 죽이고 가족을 죽이면서도 난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분명 나는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남들과 다르다는 끔찍함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전 모든 질문에 답했지만, 한 가지만 묻죠. 도대체 나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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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nu
· 7년 전
시급히 죽여야 할 괴물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