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작년 오월의 제 일기를 발췌해볼까요. "나는 아***를 죽였다."
칼 들고 설쳤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저는 아***를 죽인거죠.
아***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폭력적이었어요.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뭣하러 애를 셋씩이나 낳았는지는 모르겠네요 ㅋㅋ 저와 제 동생들은 준비물 살 돈 달라고 말하기가 눈치보이는 집구석에서 숨죽여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가 가하는 폭력의 주된 피해자였죠. 그렇다고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구요. 아***는 제게 항상 말했습니다. 동생들을 책임져야하고 돌봐야하며 기강을 바로세워야 한다고. 말 안들으면 그냥 패버려라. 말 들을때까지 패버려라. 이 집구석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는 멀리 와 있더군요.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는 우리들까지 나갈까봐 눈치를 보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두 분은 이혼을 하고, 우리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됐습니다.
아***는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육비는 주지 않았고 음주량은 더 늘었고 만날때마다 우리들에게 뭔가를 쥐어주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느이들은 날 기억해야 한다며 만년필이며 태엽시계같은 것을 사다줬죠.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불러내 음식을 사주고 용돈을 찔러주었습니다. 막내는 게임을 많이 시켜주니 그저 좋다고 따라다녔지만 저는 언제부터인지 거북해서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아랫동생도 서서히 찾아가는 횟수가 드물어졌습니다. 아***는 그래도 꾸준히 저를 불러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디어디에 뿌려달라, 내가 죽어도 선물을 보며 나를 기억해달라. 얼핏 아***가 우울증인가 싶기도 했지만 저는 제 생각에 바빠 아***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수능을 봤습니다. 수능날 아***는 저를 불러내 소주를 따라주며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대학을 어디를 가도, 설령 재수를 하더라도 너를 응원한다고 웃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설득에 따라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시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아***한테 알려드려야지, 뭔가 스스로 택했다는 기쁨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는 저를 설득해보려다 니년이 대학 안 나오면 뭘 할 수 있냐 ***년이라며 ***을 했죠. 응원하겠다던 아버진 어디로 갔는지. 아***를 다시 ***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아***는 우리가 없으면 음식을 잘 챙겨먹지 않았습니다. 위염이 도지고 심화되어 복수가 찼습니다. 입원했으니 보러오라더군요. 죽기 전에 보러오라길래 갔습니다. 힘없이 제 손을 만지시며 웃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뒤 분을 참지 못해 ***마냥 바닥을 구르며 울었습니다. ***년이라며 ***년이라며 욕할 땐 언제고 왜 그렇게 힘없이 누워서 잘 가라고 인사하느냐고 허공에 화를 냈습니다. 밤이었길망정이지 낮이었으면 여기 ***사람있다고 신고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와 제 사이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아***는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제 동생을 팼습니다. 알맞게 갖다붙인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보기엔 말도안되는 것이었고, 머리가 산발이 되고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 돌아온 동생을 본 저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당장 전화와 문자로 따졌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건 아***의 알콜중독과 폭력 때문이었다고,그걸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고 동생한테 풀지 말라고. 우리 둘은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것이라고. 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 볼 거냐는 다그침에 그렇다고 대답하자마자 끊겼죠.
열흘 뒤 누군가 문을 두들겼습니다. 비오는 밤인데 들어올 사람도 없고 지레 겁먹었죠. 한참 실랑이하다 문을 열었더니 경찰분들이 부고를 전해주셨습니다. 자택에서 돌아가셨다고. 자살이었습니다. 유서는 막내 앞으로만 썼더군요. 우리한테 엿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들은 아직도 아***가 아파서 돌아가신 줄 압니다. 간소하게 치러진 장례식에서 다들 펑펑 우는데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답답합니다. 저는 아***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몸이 약해져 일도 못 하고 대인관계가 끊기고 친가와 싸운 뒤 연락을 끊었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곁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를 내몬겁니다. 마음내킬때만 잘해주는 당신이 지긋지긋하다고, 앞으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왜 학교폭력 중 문자로 괴롭히는 거 있지 않던가요, 그거랑 다를 바 없는 형식으로 내몰아서 죽인겁니다.
할아***가 저를 보시면서 곁에 있어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납니다. 분노라는 감정이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고, 그렇다가도 우리 관계를 일방적으로 정리해버린 아***에게 또 화가 납니다. 하필 제가 갓 성인이 되었던지라. 제 손으로 이런저런 절차들을 처리하고 동사무소며 법원에 드나들다 울컥 화가 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식욕이 없어 비타민 음료로 하루 식사를 때우고 법원 갈 때 빼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이 ***맞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동생들은 저보다 어리고 힘들어하고 어머니는 아***와 절연한 사이라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말할 곳이 필요해 친구들과 술자리를 만들어놓고도 즐겁게 웃으며 노는 친구들을 따라 억지로 웃다 들어왔습니다. 술 마시면 좀 갑갑한 게 풀릴까 싶어 술을 마셨다가 아***처럼 될까봐 다시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하면 좀 가벼워질까봐 합니다. 마음이라도 좀 가벼워지려고요. 참 이기적인 놈이지 않습니까. 근데 너무 힘듭니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저한테는 너무 무거워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잘하는짓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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