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병원 전공의 입니다. 일반 감기보다는,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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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저는 대학병원 전공의 입니다. 일반 감기보다는, 좀 더 아픈 병을 앓는 환아들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제 아이 중 하나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많이 아픈 아이긴 했지만,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엄마도 아빠도, 저도 교수님도 이유를 명확히 모르는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후 4시에 괜찮은 걸 확인했고, 6시에 피검사를 확인할 예정이었는데, 5시에 갑자기 심정지가 일어났습니다. 1시간의 CPR 에도 단 한 번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너무 허탈합니다. 그 아이는 심정지 직전까지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다 이세상 마지막 기억이 스마트폰에 나오는 또봇이나 뽀로로나 뭐 그런 것들입니다. 너무 허망합니다. 답답한 교수님은, 주치의가 뭐했냐며 호통을 치십니다. 당신도 허탈하시겠지요. 제가 교수님을 원망하는 유서라도 써놓고, 우리 병동 유리창이라도 깨고 뛰어내려서 죽어야, 다시는 전공의 탓을 안 하실런지요. 그동안 노력이 너무 허망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직업을 바꾸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은 없습니다. 어린이의 죽음은 더욱. 예측되지 못한 죽음은 더더욱. 우리는 이 감정을 그저 회피하거나,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방어를 하기에 급급합니다. 내가 정말 정말 최선을 다했어도, 이런 건 너무 싫습니다. 마무리를 어찌 지어야 될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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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
9년 전
반갑습니다. 내 환자를 잃는다는 것의 상실감이란, 참으로 감당하기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어쩌면 그 이상으로 치료라는 것이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과는 무관한 결과들은 치료진을 더욱 무력하게 만듭니다. 요즈음에는 어느 정도 구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서 전공의들의 당직에 대해서 연차별 차등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대학병원 인턴과 전공의들의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특히 1,2년차들의 경우 담당환자들은 넘쳐나고, ER당직, 병동 당직, 숱한 발표 준비들과 수술방, ICU당직까지... 의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전공의를 뽑는 자리 수는 그대로 이거나 줄어들고 있어서 여전히 인력 대비 일의 비중은 무겁기만 합니다. 24시간 이상 잠을 못 자는 날이 반복되고, 끼니를 제때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환자의 건강을 지켜줘야 할 의사들이 전공의 시절 대부분 자신들의 건강을 잃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한 힘든 생활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와중에 담당환자까지 잃게 되면 정상적인 업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요. 거기에 교수님은 주치의를 비난하고 있고, 보호자들 역시 3차 병원에 아이를 맡겼는데 일어난 일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며 역시 주치의를 비난할테고... 자신이 한 아이의 생명이 사라진 일에 대한 모든 원인인 것만 같아서, 모든 이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지금처럼 의사를 관두고 싶은 마음,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되는 것이겠지요. 충분히 아파하십시오. 누군가의 주치의가 된다는 사실은 굉장히 무거운 일입니다. 지금 당장은 교수님의 비난이 일방적으로 나에게 쏠리는 것이 억울하고 황당할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아이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 사망시간 1시간 전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지요. 하지만 그들의 비난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것이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주치의가 가지는 무게입니다. 지금이야 대학병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교수님이라는 지붕이 있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면 전문의가 되실 것이고, 결국 내 환자의 건강에 관한 모든 책임 앞에 내가 혼자 서야 하는 순간이 오실 겁니다. 반드시 오게 될 그 순간이 되었을 때 금번과 같은 일을 겪게 되면 지금보다 더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절감하게 되겠지요. 지금 충분히 아파하셔야 나중에 온당 짊어지게 될 그 무게를 잘 견디실 수 있습니다. 지금 너무 아프고 힘드시겠지만 전공의 시절 동안 내 환자를 잃고 충분히 아파하고 고뇌하는 순간들을 지나 본인의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 님을 더욱 단련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의 한계를 받아들이십시오.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는 일을 하지만, 결국 한 인간일 뿐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잠시 연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져야겠지만 모든 사람의 생사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하고 겸허해져야 하는 일이구요. 님은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있고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비난의 화살이 님에게 향하는 것은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할 일이 앞으로 님이 걸어가게 될 의사의 길이구요. 담당 교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이 되면 온전히 님이 짊어져야 할 몫입니다. 그것이 님이 택한 의사라는 직업의 몫이니까요. 지금 충분히 아파하시고, 더욱더 단단해지실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남들의 비난은 이해하되 지나친 자책보다는 의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명 앞에 더욱 겸허해지시길 바랍니다. 마인드카페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의사 #전공의 #상실 #애도반응 #책임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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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 9년 전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아무리 의사라도 환자들과 인간적 감정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니 당연히 정이 가고 마음도 쓰이겠어요. 특히 아이들이니. 인생 제대로 살아***도 못하고 ㅠㅜ 의사선생님들께도 참으로 힘든 순간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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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theone
· 9년 전
고인의명복을빕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많이 살아***못한 어린아이였기에 더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그래두.. 마카선생님의 따뜻한 케어를 받고 좋은곳으로 갔을거라 생각해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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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wlqtnsdk
· 9년 전
가슴이 아픕니다..선생님 일도, 아이 일 모두 다요.. 여태까지 힘든 공부 버텨오셨는데 ..인간사 인력으로만은 안되는 일이 있다고 맘 다독이시며..휴식의 시간을 가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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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ms
· 9년 전
작성자님 본인이 직접 상태를 확인했고 1시간 후 심정지가 일어났다. 교수님이 직접 환자상태를 확인한 주치의인 작성자님께 호통을 치는걸 그저 답답한 마음에 주치의를 탓하는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거면 직업 바꾸시는것도 괜찮으실것같습니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봐야하는 직업인건 작성자님도 충분히 알고 의료인으로써의 길을 가신거겠지죠? 환자의 부모님들은 현실을 직시해야하는데 주치의는 회피하거나 자기방어를 먼저 생각한다는건 저는 솔직히 좋게보기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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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yr
· 9년 전
상심이 크셨겠어요..ㅠㅠ어레스트일어낫을때 얼마나 무서우셧을까..항상최선을다하는 병원관계자분들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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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88
· 9년 전
끝까지 살다간 환자 아이와 최선을 다해 치료해주신 작성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님같은 분들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의료환경이 유지되는지도 모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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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ia
· 9년 전
정말 억울하고 절절한 사연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도 작성자님같은 분이 의사를 하고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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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othy12
· 9년 전
이렇게 글로 접하는 저도 마음이 무겁고 막막합니다 선생님은 얼마나 무거우실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같은 분이 의사라는게 정말 따뜻합니다 아이는 좋은 곳에서 건강하게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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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글쓴이)
· 9년 전
글 작성자입니다. 참고로 저희 환아들은 백혈병 환아들입니다. 하소연 글에 많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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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lalahuh
· 9년 전
대한민국에 이런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의사선생님이 계신지 몰랐습니다.. 요즘 신해철 담당의, 유가족 의료사고 패소 등의 뉴스가 자주 오르내리고 그러다보니, 의사는 감정없는 인간들이다.라고 얘기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의사로써의 무게도 짐작해보건데.. 그 심적 중압감이 상상도 못할만큼 클것같습니다. 힘내세요! 의사선생님이 가길 어딜 갑니까! 지금도 선생님을 기다리는 천사같은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러니 선생님은 어디에도 못가십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